[230924] 영국 세븐 시스터즈, 브라이튼
마지막에 마지막에 찐 마지막이 되어서야 뿅 하고 나온 나의 캐리어... 코로나 이후 항공 수하물 지연 또는 분실이 잦아졌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서 슬슬 걱정이 되었는데 무사히 잘 도착해주어서 어찌나 다행이던지...
히드로 공항에서 런던 까지는 얼리버드로 미리 예약한 히드로 익스프레스를 타고 이동...
친구가 사는 브라이튼은 버스로 가는 게 더 빠르고 편리하고 저렴한데, 보통 히드로에서 바로 브라이튼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보니 검색해봤을 때 주로 기차로 이동하는 방법을 안내해주셔서 버스라는 선택지가 있을 줄은 몰랐다는 거ㅠ
그래도 뭐 여행 온 김에 다양한 교통편을 이용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긍정적으로~!
그리고 히드로 익스프레스도 그렇고 영국 대부분의 기차는 티켓을 애플 월렛에 저장해두면 더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아쉽지만 히드로 익스프레스는 패딩턴 역까지만 운행을 하고, 브라이튼으로 가기 위해서는 빅토리아 역까지 지하철로 이동을 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나의 짐 가방의 무게는 거의 내 몸무게의 반에 가까운 23키로에 달했는데 하필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가 고장이 났지 뭔가... 신이시여 나에게 어떻게 이런 시련이... 이 때만 해도 처음 와보는 낯선 나라에서 다른 길을 찾아볼 여유가 없었다... 조금만 더 돌아봤으면 엘리베이터도 있었을텐데, 이 때는 미련하게 캐리어를 이고지고 낑낑 대면서 결국 계단을 다 내려왔다.
영국의 지하철.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낡고... 낡았다...... 저 좌석들 한 눈에 봐도 꼬질꼬질 해서 앉기 찜찜했는데, 요즘 한국에 빈대가 창궐하면서 런던 지하철 시트에 빈대가 드글대는 사진과 영상이 자꾸 뜨더라고요... 한국에 오고나서 빈대 이슈가 발생한 것이 천만다행... 아니었으면 저기 어떻게 앉고 다녔을지...
빅토리아 역까지도 한 번에 가는 노선은 없어서 한 번 환승을 했는데, 생각보다 영국 지하철이 직관적인 편이었어서 (그리고 비슷한 시스템을 이미 칠레에서 겪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갈아탈 수 있었다.
런던을 비롯하여 영국 곳곳엔 이렇게 신호등 아래에 대기 버튼? 같은 것이 있는데, 영국이 처음인 촌뜨기가 버튼을 누르고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사람들이 그냥 막 빨간 불에도 거침 없이 길을 건너는 것 아닌가? 뭐지? 세상이 나를 상대로 몰래카메라라도 하나? 어찌되었건 나는 무거운 짐을 끌어야 해서 빨리 건널 수가 없었기 때문에 초록불이 뜰 때까지 기다렸다가 건너기는 했는데, 이 이후로도 길을 건널 때 마다 그 어느 누구도 신호를 지키는 사람이 없더라... 나중에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니까 친구가 웃으면서 맞다고 유럽 사람들은 다들 무단횡단을 한다고, 자기도 유럽에서 무단횡단하는 버릇이 몸에 배여서 한국에 가면 어떡해야 할 지 걱정이라고 얘기해줬다.
드디어 빅토리아 기차 역에 도착. 영국을 상징하는 빨간 이층 버스와 택시도 역으로 가는 길에 볼 수 있었다. 이제야 슬슬 영국에 도착했음을 실감.
빅토리아 역으로 향하는 기차표도 구입하고 (이 이후로는 어플을 통해 티켓을 구매했기 때문에 지류로 된 티켓은 이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브라이튼으로 가는 플랫폼은 초행길이라면 찾기 어려운 구석에 있는데, 티켓을 보여주며 브라이튼으로 가는 기차는 어디서 타면 되냐고 물어보니까 역무원들이 친절하게 알려준 덕분에 무사히 기차를 제 때 바로 탈 수 있었다.
브라이튼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고 오다 보니 문을 연 가게들이 거의 없기도 했고, 일찍 도착해서 씻고 친구가 예약해준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아침은 간단하게 기내에서 챙겨온 비스킷과 치즈로. 저 물병이 사이즈가 딱 가방에 넣고 다니기에도 좋아서 이번 여행 내내 요긴하게 잘 썼다. 풍경만 봐도 영국 느낌이 물씬.
드디어 도착! 브라이튼이다!!! 친구가 내가 도착하는 열차 시간에 맞춰서 역에 마중을 나와줬다. 친구네 집까지 가는 길에 계단이 좀 있었는데, 저 무거운 캐리어를 한사코 본인이 끌어주겠다고 해서 고생이 참 많았다. 싱가폴에 경유하는 동안 덥고 습한 날씨 탓에 땀이 많이 났어서 얼른 씻고 싶었기에 일단은 짐은 대충 풀고 바로 샤워부터...
여행을 오기 전 친구가 영국에서 먹고 싶은 음식이 있냐고 묻기에 검색해보니 영국의 전통 음식으로 '선데이 로스트'라는 것이 있다길래 슬쩍 얘기해봤는데, 브라이튼에서 맛있는 선데이 로스트 집을 알아내서 예약까지 해주었다. 감동 감동...
도착하자 마자 낮술을... 먹게 될 줄은 몰랐는데... 여기는 무조건 인당 주류 한 잔씩 주문해야 한다길래... 강매당함...
맥주를 홀짝 거리고 있다보니 서빙된 선데이 로스트!
옆 자리 영국인들이 우리 테이블의 선데이 로스트를 보고 어메이징 하다고 감탄하면서 엄지 척을 보내줬다.
비쥬얼만큼이나 맛도 최고! 영국에서 먹은 음식 중 제일 맛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브라이튼 근교 세븐시스터즈로 이동. 보통 런던에서 당일치기로 브라이튼을 오는 여행객들의 경우 대부분은 이 세븐 시스터즈에 가기 위해 들른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원래 오늘은 좀 쉬엄쉬엄 브라이튼을 어슬렁 거릴 예정이었는데, 브라이튼에서 세븐 시스터즈로 가는 교통편이 평일에는 12A, 12X 버스, 주말에는 13X 버스가 있는데 12번 버스의 경우 내려서 좀 걸어야 하고 13번 버스는 바로 앞에서 내려주기 때문에 좀더 편하게 다녀오기 위해 + 세븐 시스터즈는 짧게 다녀와도 충분하다는 친구의 조언에 그냥 이 날 세븐 시스터즈를 다녀오기로 했다.
전날까지 비가 많이 왔다는데 (그래서 바다 색이 누런 흙빛이었다. 친구한테 브라이튼 바다 똥물이라고 내내 놀림) 내가 오니 비가 그치고 해가 나서 정말 다행이었다. 아침에도 비가 조금 왔었다던데 그래서 그런지 현지인들도 다들 패딩을 입고 있었다.
아, 그리고 브라이튼에서 세븐시스터즈로 가는 버스는 갈 때는 오른쪽, 올 때는 왼쪽에 앉아야 창 밖 풍경을 더 잘 볼 수 있어요.
세븐 시스터즈 가는 길. 오른쪽 사진을 보면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친구 말로는 12번 버스를 타면 이렇게 좀 걸어야 한다더라. 근데 세븐시스터즈로 가는 길이 정말 예뻐서 한 번 걸어볼 만 하다고.
드디어 도착한 세븐 시스터즈! 언덕에 오르기 전에 친구가 영국을 상징하는 빨간 전화 부스와 우체통 앞에서 사진 하나 찍고 가라고 해서 한 컷. 언덕은 정말 말 그대로 언덕이라 금방 올라가요.
저 하얀 절벽이 바로 우리가 세븐 시스터즈에 온 이유!
정말 저 절벽이 전부나 다름 없는 곳😂 바닷가라 그런지 바람이 많이 불어 추웠다. 날이 좀 따듯했으면 해변에서 더 오래 즐길 수 있었겠지만, 우리는 이 정도면 즐길만큼 즐긴 것 같다 하고 브라이튼으로 다시 돌아갔다.
브라이튼과 세븐시스터즈를 오가는 버스는 이렇게 브라이튼의 버스 어플인 Brighton Hove 를 통해 간편하게 구입 가능하고, 보통 이렇게 1일권을 끊는다고. 1일권은 티켓을 구입한 시점으로부터 24시간 동안 유효하다.
브라이튼으로 돌아와서, 친구가 브라이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브라이튼 팰리스 피어 구경을 시켜주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기자기하고 예쁜 곳인데, 안은 그냥 싸구려 오락실이다. 반전 매력이라면 반전 매력.
이 양에 대해서도 친구가 소개시켜주었는데,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숀 더 쉽이라는 유명한 캐릭터인데, 이게 브라이튼의 유명한 장소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모든 양들이 각자 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시민들에게 도네이션을 받는다고 했나? 그랬던 거 같다.
자세히 보면 저 안에 오락실 기계들이 보인다. 아, 이제 보니 앞에도 싸구려 목마? 같은 게 있었네.
멀리서 볼 때 더 아름다운 피어...
영국 왕의 별장이었다는 건물. 이 별장이 브라이튼에 들어서면서부터 바닷가 촌동네였던 브라이튼이 지금의 휴양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거라는 친구의 설명. 당시 왕이 아랍 문화에 심취해 있었어서, 이국적인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친구가 이 건물은 앞 모습 보다는 뒷 모습이 더 예쁘다고 데려다 준 공원 뒷 편. 정말 친구 말 대로 뒷태가 더 아름다운 궁전이었다😂
브라이튼 번화가도 한 바퀴 둘러보고 친구네 집에 들어갔다. 점심에 먹은 선데이 로스트가 기름지고 양이 많아 소화가 다 되지 않은 탓에 저녁은 생략. 첫날이라 시차 적응이 아직 채 되지 않아서 8시 좀 넘어서 잠들었던 것 같다. 처음 이 여행을 계획했을 때만 해도 친구네 집이 방 두개짜리 큰 집이었는데, 집 주인이 월세를 올리면서 갑작스럽게 집을 나와야 하는 바람에 이 집을 급하게 구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신축 건물이라 시설도 깔끔하고 좋긴 했는데, 치명적인 단점. 침대가 하나 뿐이라는 거. 친구가 자기 침대를 나에게 양보해주고 본인은 거실의 쇼파에서 자는 고생을 해주었다. 덕분에 편하게 침대에 누워 잠들며 하루를 마무리...
내일은 친구가 어학원 수업이 있기 때문에 나 혼자 런던을 돌아다닐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