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2025年(乙巳年)

반구정 · 화석정

一切無 2025. 5. 1. 07:59

일시 : 2025. 4. 30. 수요일. 맑음(센바람)

 

 

아내랑 황희 정승이 말년을 보낸 황희 선생 유적지를 다녀왔다. 앙지대를 오르니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아래 반구정은 담지도 않고

내려오는 우를 범했다. 방촌 황희 기념관에 들러 5분간 직원의 해설을 들으며 황희 정승을 알았다. 오로지 백성의 평안을 도모하고자 했던 황희와 그를 중용한 세종대왕.

 

 

 

 

↘ 황희 선생 유적지 입구에서

 

 

 

 

 

↘ 반구정 등 황희선생 유적지로 들어가는 청정문 (淸政門)

방촌기념관 맞은편의 청정문 안으로는 좌측으로 고직사, 월헌사, 방촌영당, 경모재, 황희동상이 있고, 우측으로 앙지대와 반구정이 임진강 절벽 위에 우뚝 서있다. 청정문(淸政門)은 삼문(三門) 맞배지붕으로 평상시에는 가운데 문은 닫혀 있다. 

 

 

 

 

 

↘ 앙지대 (仰止臺)

반구정 위쪽으로 앙지대란 정자가 있다. 앙지대(仰止臺)는 원래 반구정이 있던 자리다. 반구정을 아래로 옮기면서 원래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육각형의 좀 더 화려하게 보이는 앙지대라는 정자를 세웠다고 한다. ‘앙지(仰止)’는 ‘덕망이나 인품 때문에 우러르고 사모’한다는 뜻이다. 반구정이나 앙지대에서는 맑은 날 정자에 오르면 멀리 개성의 송악산을 볼 수 있다. 

 

 

 

↘ 아래 반구정을 배경으로

 

황희 정승이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친구 삼아 여생을 보내던 곳이다.

임진강 기슭에 세운 정자로 낙하진과 가깝게 있어 원래는 낙하정이라 불렀다.

 

 

 

↘  반구정에서

 

 

 

↘ 방촌 기념관에 들어와

 

 

 

 

 

↘ 황희 선생 유적지 옆 반구정 나루터집에서 메기매운탕으로 점심

 

 

 

 

 

↘ 화석정으로 이동하여

 

이곳은 원래 고려 말기의 문신 길재(吉再)의 유지(遺址)였던 자리였다. 1443년(세종 25)에 이명신(李明晨)이 건립하였고 1478년(성종 9)에 이숙함(李淑瑊)이 화석정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이명신의 증손인 이이(李珥)가 중수하여 퇴관(退官) 후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면서 시를 지으며 학문을 논하였다. 

 

 

 

 

花石亭 (화석정)                           화석정에서

 

林亭秋已晩 (임정추이만)  숲 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저물었으니

騷客意無窮 (소객의무궁)  시인의 생각은 끝이 없어라.

遠水連天碧 (원수연천벽)  먼 물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霜楓向日紅 (상풍향일홍)  서리 맞은 단풍은 해를 향해 붉었네.

山吐孤輪月 (산토고륜월)  산은 외로운 보름달을 토하고

江含萬里風 (강함만리풍)  강은 만 리를 부는 바람을 머금었네.

塞鴻何處去 (새홍하처거)  변방의 기러기 어디로 날아가는지

聲斷暮雲中 (성단모운중)  그 소리 저무는 구름 속에 멀어져 가네.

 

 -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 선생이 여덟 살 때 지으셨다.-

 

 

↘ 임진강 나루터를 배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