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당신은 아름다운 시(詩)!
어머니는 1933. 10. 7. (음력) 충남 홍성군 금마면 인산리 15번지. 인흥에서 부친 장학득· 모친 오상녀의
둘째 딸로 태어나셨다. 세월이 흘러 1955년 이웃 예산군 대흥면 향교말에 사는 총각 박붕래에게 시집을 왔다.
그리고 슬하에 1남 5녀를 낳으시며,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우리를 키워 주셨다.
어머니 은혜는 끝이 없어라. 고맙습니다.
↘ 세 살 때 울안 가지밭에서. 하도 울어서 가지를 꺾어 주니 울음을 그쳐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자세히 사진을 보니 가지를 입에 물고 찍혔다. 손에는 가지를 들고. 당시 시골에는 사진사들이 돌아다니며 사진을 찌고, 삭은 돈들이 없으니 곡물로 받았나 보다. 쌀로(바가지) 주셨다고 어머니가 말씀을 하셨다는데 정확히 기억이 안닌다.
무척 신경을 쓰셨을 것이다. 가난하여 시어니, 손위 동서가 한집에서 살았으니.
나는 충남 예산군 대흥면 교촌리 526번지. 향교말에서 1956. 3. 5.(음력)에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집은 할머니가 지으신 집이다. 할아버지 고향은 홍성이고, 할머니 고향이 대흥면 교촌리 회천이다. 할머니가 다시 친정으로 오신 것은 어린 동생들을 키워야만 했던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회천이나 향교말을 조그마한 냇가로 가른 것이다.
사진 뒤에 보이는 초가집은 방이 2칸인데 안방은 큰집, 건넌방은 우리가 사용했나 보다. 나의 뒤통수가 왼쪽으로 기운 짱구인데, 겨울에 추워서 한쪽으로 재워서 키웠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내 나이 네 살때 어린 아기 여동생과 수원으로 이사를 하였다. 하지만 어려서는 기억이 안 나고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생각이 나는데 방학이면 나는 고향에서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까지 지냈다. 할머니가 수원으로 오셔서 고향은 가지를 않았다.
↘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 용주사에서.
내 추측으로는 아버지 생애 최고의 해였던 것 같다.
화서동 독말에서 돌산 운영을 위임받아 돈맛을 보았던 시기..
↘ 매산초등학교 5학년 봄소풍을 인천으로 갔다. 수인선 협궤열차를 타고 송도에서 내려 인천항,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까지 보았다. 아이들이 자유공원을 가면서 인천의 번화가를 보고 입을 쩍쩍 벌리면 떠들었다.
↘ 초등학교 6학년 졸업사진(
매산초등하교는 1963. 3월에 입학을 하였다. 당시는 고등동에 살았는데 어머니와 함께 입학식에 갔고, 구내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어머니와 남문 영동시장을 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1968년도 가을학기에 지방 학생들은 중학교 서울진학이 막혔다. 그 유명한 국민교육헌장을 선포하고, 말이 초등학생이지
여름방학도 없이 학교에 나갔다. 화서동 서문밖에 살았는데 평시에는 밤늦게 까지 공부를 하고 퇴교하여 문안 시내로 집을 왔다. 오다가 중국집 팻말에 졸며 이마를 여러 번 부딪혓다. 6학년때는 공뷰를 제법 하였는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공부를 안하여 오늘의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 중학교 2학년 가을 수학여행 중 불국사에서.
수원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진역에 내려 동명합판 공장을 가고, 해운대까지 갔었다. 부산진역에 내리리 "따땅콩 사이소" 외치는 경상도 사투리가 아직도 귓가를 울리는 것 같다. 하룻밤을 부산에서 자고 경주 불국사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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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등포공고에 입학하여 1학년 증명사진
↘ 3학년 졸업사진에서
↘ 이 사진은 고 3학년 가을에 찍은 것 같다.
↘ 1973-4. 2 (추정) 서문아파트 1동 12호 공터에서(좌로 부터 석준, 나, 태하)
↗ 2동 옥상에서 (1977. 10월) 서장대를 배경으로
↘ 1974. 3 (추정) 옆집 211 가족들과 헤선, 선비(내가 철도 임용할 때 신원보증)
↘ 1974. 3 추정 좌로부터 어머니, 큰이모, 현자, 혜선, 선비
↘ 둘째 노손이 수원여자중학교 졸업식(1978. 2), 셋째 노숙이는 초등학교 5학년, 어머니 46세
↘ 노손이 삼일고등학교 졸업사진(1981. 2)
첫째 동생은 부산에서 올라왔고, 친구 석준이도 왔고, 막내 혜선이 초등학교 2학년인데 방학인가?
사진을 보니 학교도 안 들어간 아기인 줄 알았는데 계산해 보니 초등학생이네. 그러고 보니 딸내미 세영이가 엄마 붕어빵.. 나는 그해 2. 14. 방위 소집 입영을 하였으니, 최소한 그전에 졸업식을 하였는데 1월인지 가물가물
↘ 81. 2 . 노정이 신풍초등학교 졸업식.
이모가 참석을 하였네.
나는 아마 훈련소에서 훈련소에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 49세. 이모 47세. 어머니는 이때만 해도 날씬하셨네.
↘ 2대 독자로 판명되어 늦은 나이에 방위소집에 입영. 용인 제63훈련단 신병교육대에서 훈련을 받으며
1981. 2. 14. 입소하여 3. 13. 퇴소
나이 어린 동생들과 훈련을 받느라 힘이 들었다, 거기다 동작이 느려 밥도 제대로 먹지를 못하고 교육을 받았다.
사진을 보니 몸골이 반쪽이다.
훈련 중에 1981년 2월 25일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해 전두환 대통령에 선출 . 3.3 일 취임
↘ 훈련을 마치고 용인 3군 사령부 본부사령 근무지원중대에서
군사령부 버스로 출·퇴근하며 근무하고 9월 11일 전역.
↘ 이종동생 기웅, 이모, 어머니와 팔달산을 걸었다.(기웅이는 철도에 근무, 나는 철도 임용 전)
↘ 어디, 가물가물 광명 철산아파트가 아닐는지.
↘ 84. 5. 어머니가 어디에 가셨을까?
나는 84. 2. 15. 신탄리역에 부임하여 그곳 승무원 합숙에서 기거하며 근무.
↘ 84. 2. 정자동으로 이사(3.14)하기 전 동생들과 조카 영호를 데리고 사진을 찍었는데 독사진만 남아 있네.
↘ 사진 장소로 보아서는 신풍동(1986. 2. 7 - 87. 7. 6)
살 적에 촬영하신 것 같은데 누가 촬영을 하였을까?
↘ 1988. 5. 8. 어버이날 자연농원에서
↗ 할아버지 묘 이장(대흥 선산)
↘ 1988. 8. 12. 금요일. 정자동에서 (음력 7. 1) 아버지 생신
↘ 1988. 10월 어느날 수덕사에서(당진 부곡리 필경사를 탐방하며 하룻밤을 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