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일 시절 38

소요산 산행

일시 : 2004년 10월 20일. 수요일. 맑음   한국철도공사가 발족되기 전 철도청 용산역 열차운용팀에 근무할 당시 갑반 열차운용팀장들과 부부동반으로 소요산을 다녀왔다. 김성호, 유희억, 김영재, 박노진 부부와 손성락 팀장은 사모님을 모시지 못하고 소요산 단풍산행을 하였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옛 일을 추억하며.소요산은 신탄리역(1984년)에 근무할 당시 홀로 단풍구경 다녀오고, 20년 만에 온 것이다.    ↘ 뒤풀이(돼지갈비, 노래방, 호프집)를 마치고 소요산역을 나오며

백석역 근무

백석역은 2001. 1. 1. 부임하여 2003. 4. 9까지 근무하였다. 전날 백석역에 들러 조찬일 역장님께 인사를 드리고,화정역으로 가서 후임 부역장에게 인수인계하였다.  1. 1 부임하여 을반 근무를 시작하였다. 같은 을반 직원은 운전원 오영두, 매표 담당 김은숙, 권우정 이렇게 네 명이 근무를 하고 업무 보조로 공익근무 요원들이 4명이 조를 짜서 교대로 근무하였다. 백석역은 화정역과 달리 Y선(대피선)이 있어 열차 고장, 지연할 때 운전 취급을 하였다. 그래서 조작반을 취급하는 운전원이 있었다. 내가 근무할 때는 7. 8번 출구 밖은 일산병원까지 공터였고, 백석역을 떠나오기 전에 종합터미널 공사를 하려고 준비하는 단계에 있었다. 1. 2번 출구 밖도 공터였고 건물들이 들어서려고 공사를 드문드문 하..

사진으로 보는 가좌역 시절

가좌역은 2011. 1. 3 일에 부임하여  2012. 8. 20일 원당역으로 전출하였다. 가좌역은 근무하였을 때 정거장 사진이 달랑 한 장밖에 없다. 지금은 지하로 전철이 다니지만 내가 근무하였을 때는 전철 지하화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었고, 전출한 그해 12. 15일에  디엠시역에서 공덕역까지 지하로 전철이 운행되었다. 가좌역은 예전에는 용산역에서 가좌역까지 운행하는 용산선도 있었다. 내가 전입하였을 때는, 이미 2005년에 서강역 · 가좌역 간 철길이 철거되어 철길은 없었다. 용산선이 운행되었을 때 근무하였던 직원으로부터 그 시절의 회상을 듣곤, 가끔 역구내 철길이 있었던 사천교까지만 순회하였다. 그 뒤로는 철길을 막아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1. 3. 월요일. 가좌역 부임하여 2조 부..

원효 · 염초 릿지 - 1 -

일시 : 2006. 06.22. 목요일. 맑음인원 : 황봉선. 박용권. 윤달연. 나코스 :-효자파출소앞-원효대슬랩-원효봉-염초봉-백운대        -북한산성길-산성매표소-효자파출소앞     우리 일행은 효자파출소앞에서 내려 탱자나무집을 걸쳐 시구문매표소방면으로 오르지 않고, 조금 올라 샘을 지나 성벽까지 산을 오른다. 들머리가 조금 입장이 곤란한 길이다. 조금 가파른 길을 올라보니 성벽이 앞을 딱 가로 막고 있다. 성벽을 오르는데 이곳도 만만하지는 않다. 성벽을 올라서 등산화를 고쳐 신고, 채비를 갖추고 원효대슬랩을 향하여 발걸음을 향한다. 중슬랩을 지나 한곳의 슬랩을 지나서 대슬랩에 도착하였다. 대슬랩을 힘겹게 올랐다. 이곳도 몸을 꼿꼿이 세우고 앞발로 오르는 구간이라 힘이 배가 된다.  먼저온 다른..

사진으로 보는 수색역 시절

수색역은 2006. 4. 1에 전입하여 2011. 1. 2에 가좌역으로 전근하여 갔다. 철도 생활 30년 9개월 동안 구로 열차 8년 20일 근무를 빼고 두 번째로 긴 5년간 근무를 한 곳이다. 만약에 내가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면 나의 인생은 어떻게 변했을까? 가끔 가정하였던 곳이다. 인생을 논하는데 가정은 없지만, 수색역은 노조가 강성이라. 중간관리자는 위에서 치고 아래에서 치여 근무를 기피하는 곳이다. 툭하면 빙법태업, 준법투쟁을 시범으로 시행하였다.그런 와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온라인 산악회 활동을 열심히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에서 그런 기운이 샘솟았는지 모르겠다. 2007년도는 무려 94회나 산행을 하였다.   꽃은 그 꽃을 본 사람만 알 수 있다.꽃을 보는 것과 꽃을 설명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사진으로 보는 서울역 시절

서울역은 2005. 4. 1. 에 부임하여 2006. 3. 31까지 근무를 하였다. 서울역에 전입하여 올 때는 타의에 의하여 왔고, 전근할 때는 자의에 의하여 떠났다. 서울역 근무가 싫어서가 아니라 집 가까운 수색역으로 보내 준다고 하여 떠난 것이다. 막상 수색역에 가보니 그렇지 않다. 세상일이란 모두가 마음과 마음으로 주고받는 메아리인데, 울림의 메아리를 모르는 어리숙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전날 용산 산정회관에서 송별식을 하였는데, 과음으로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지끈 거린다. 서울역에 첫 출근을 하여 박선규 역장님, 수송부 최진철 부장님께 부임인사를 드리고 열차운용팀에 갔다.이승호 팀장, 이경천 팀장과 같이 1조에 소속되어 주간근무를 하니 3조 2교대의 첫 시작을 서울역에서 한 것이다. 꽃을 가꾸..

사진으로 보는 용산역 시절

2003 4. 10. 백석역 안동식당에서 송별식을 마치고 서울역장실에 부임 인사를 하러 갔다.당시는 서울역장이 관리역장이었다. 인사를 마치고 용산역에 와서 역장님께 인사를 드리고열차운용팀장으로 부임하여, 2004. 10. 10 역무팀장(수송담당)으로 보직을 받아  2005. 3. 31. 까지 근무를 하였다.   봄바람처럼흔흔한 마음으로 사람을 접하고얼굴에는 화평한 기분이 넘쳐 흘러야 한다.     ↘ 용산역에서 버스로 이동하여 인천에서 파워 코레일 워크숍( 2003. 11. 15.)     2003년 가을 체육대회(한강 이촌한강공원에서)    ↘ 2004. 2. 29 KTX 시승(용산 - 대전)     A 9995 열차(최재학 팀장)     시승을 마치고 명동교자에서 칼국수 먹고 명동성당. 연신내 문고(..

사진으로 보는 화정역 시절

화정역은 1999. 3. 29 발령받아 2000. 12. 31까지 근무를 하였다. 화정역은 당시 햇빛마을과 도보로 17분 거리에있었고, 아내가 전철로 볼 일을 보러 갈 때 가끔 들러 직원들과도 친밀하게 지냈다. 오산역에서는 운전취급으로 새벽 2시에 교대로 근무를 하였는데, 화정역은 여객만 취급하여 막차가 끝나면 첫차까지 숙면하여 다음날 피곤하지 않았다. 또한 낮에도 운전취급에 얽매이지 않으니 마음 편히 근무를 하였다.    비록 운명이 하늘에 의해 정해져 있다고는 하나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는가에 따라 방향을 달리할 수도 있다.   ↘ 99. 4. 29. 목요일. 화정역 직원들과 석모도 보문사에 들러(직원들과 함께한 사진이 없다)    ↘ 99. 5. 21. 금요일. 화정역 직원들과 강촌에서        화..

사진으로 보는 오산역 시절

오산역은 1997.12.29. 발령받아 1999.03.28. 화정역으로 전근하였다. 99년에 화정으로 이사하여 출·퇴근 거리가 멀어 15개월의 짧은 근무지만 아쉬움을 남기며 떠났다.개인적으로 오산역은 초임 부역장으로 철도의 꿈과 희망에 차 부임을 하였고, 당시 같이 부임한 역장님도 초임 역장이었다. 당시는 24시간 격일제 근무로 갑·을반 교대근무를 하였다. 출근은 마침 출근 시간이 맞는 무궁화호 열차로 하였고, 퇴근은 열차가 없어 역사 옆에 있는 오산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로 퇴근하였다.      ↘ 광장에서 바라본 오산역사 전경    ↘ 98. 4. 14   ↘ 98. 4. 8수원역과 합동으로 쌍계사 관광열차 유치하고 오산역 모집 손님을 인솔하고 쌍계사를 같다. 당시 관광열차는 여행이라보다 열차 내에서 음..

사진으로 보는 청량리역 시절

청량리역은 1986.10.16. 전입하여 1989.12.08.  구로열차사무소로 전출하였다. 3년을 넘게 근무하였는데도 사진이 별로 없다. 아마 사진을 분실하였나 보다. 그러나 난 이곳 동료 아내의 친구를 만나 1989. 1. 28. 영등포 한일예식장에서 백년가약 화촉을 밝혔다.     1989. 봄에 소백산 산행을 하였는데 산행 중에. 다른 사진은 어디로 갔나.      1989년 가을 체육대회(장소는 어딘지 모르겠다)    일시 : 1989. 10. 16. 월요일 - 10. 18. 수요일 인원 : 정확히 모름. 생각나는 분         이계장, 권태순 계장, 함재영 계장, 미스박, 여객반 반장님,          등등 몇분은 생각이 나지 않음.     - 용대리   - 백담사   - 수렴동산장(1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