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1990年(庚午年)

서둔동 시절(1990년)

一切無 2021. 12. 24. 23:41

 

12월은 아이들 생일이 있는 달이다. 즉 귀 빠진 날이 있는 달이다. 정상적인 아이는 머리부터 나오는데, 아이의 머리는 어깨보다 더 크다. 귀가 빠진다는 것은 힘든 고비를 넘기고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들아! 살아가면서 힘든 고비가 도처에 널려 있다. 유능한 항해자는 바람과 파도를 잘 이용한다.  유능한 항해자가 되려면, 통찰력과 혜안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갖추려고 부단히 노력하라.

 

 

 

 

 

 


     서둔동은 수원 팔달산에서 보면 서쪽에 있는 언덕이다. 주변에 서호, 농촌진흥청, 농업작물시험장, 기상관측소, 서울대학교 농대, 딸기의 푸른지대가 있었다. 그곳으로 이사를 간 것은 대중교통(1번 시내버스 시종착)이 좋고, 전세 가격이 저렴해서다. 이 집을 구하려고 만삭의 아내가 애썼다. 미안하고 고맙소. 맨땅에 헤딩하여 오늘 우리가 사는 집을 이룬 것은 어디까지 너희 어머니의 눈물겨운 수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전에 할아버지도 인정하고 칭찬하여 주었다.
너희들이 태어나 잠시 머문 집은 마당과 내부가 넓었다. 집 바로 위  언덕길 너머는 탑동이었고, 주변에 과수원들이 있는 목가적 풍경이 그윽한 동네였다. 
서둔동은 1989. 9. 추석전에 이사와 1992. 12. 말경에 화서동 영광아파트로 이사하기 까지 3년 3개월을 살았다. 그곳은 나의 신혼생활이 깃든 곳이며, 아가들의 고향이다. 부디 살아가며 고향을 잊지 말기를.

 

 

 

↘ 정자동에서 서둔동(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179-22)으로 이사하여 혜민이 낳기 전 아침을 하다, 부엌에서 아내가 서둔동 성당을 배경으로 촬영한 일출.
      (1989. 12. 14. 07:00)

 

 

 

↘ 집위 길에서 탑동을 배경으로 

 

 

 

 

 

 

혜민
양력 1989. 12. 17. 일요일. 02:00(수원 종로 한양산부인과)
음력 1989. 11. 20. 일요일. 己巳年 

딸내미! 네가 세상에 울음을 터트리며 나온 날, 아빠는 의정부역 주박 숙소에서 잠을 잦고. 퇴원 때는 수속을 하려고 병원에 갔는데 엄마 홀로 수속을 마치고 너를 안고 퇴원을 하였구나. 엄마 홀로 입원과 퇴원을 하였다. 미안하오. 

 

 

↘ 1989. 12. 25 (8일째)

 

 

 

 

 

↘ 추억의 22 구공탄. 서둔동에서 마지막으로 사용. 연탄불에 대한 사연도 많았지.

 

 

 

 

 

 

 

↘ 서울 농대 축산시험장을 배경으로

 

 

 

↘1990. 1. 29

 

 

 

 

↘ 1990. 1. 31 큰고모가 사준 내복

 

 

 

 

 

 

 

 

↘ 1990. 2. 16

 

 

 

 

 

 

 

 

↘1990. 02 .23(1.28) 아내 생일

 

 

 

 

 

↘ 1990. 2. 27

 

 

 

↘1990. 03. 06

 

 

↘1990. 3. 9

 

 

 

지하 아주머니 (농촌진흥청 근무하는 박사 사모님)

 

 

↘ 칠보산 산행  중 호매실리에서 

 

 

 

 

 

 

 

 

↘ 하루 앞 당긴 백일기념(90.3.25)

 

 

 

 

 

 

 

 

 

↘ 내 35회 생일(90. 3. 31)

 

 

 

↘ 으뜸회 모임, 봉담저수지에서 (향어 낚시였는데 한 마리도 낚지 못해 양어장에서 준 향어 1마리를 집에 갖고 왔다.)

 

 

 

 

 

 

↘ 동네 산책(푸른지대, 서울 농대). 푸른가든에 들어와

 

 

 

 

 

 

 

↘ 무엇 때문에 웃는지. 안방에서

 

'가족이야기 > 1990年(庚午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둔동 시절(1990년 - 2)  (0) 2022.05.06
서둔동 시절(1990년 -3)  (0) 2022.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