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9. 6. 8. 월요일
오늘 아래층이 이사를 왔다. 이삿짐은 창문으로 들여야 한다. 그러려면 주차장 셔터를 올려 주어야 하는데. 금동이를 목줄을 만들어 묶어야 한다. 금동이를 묶고 다른 곳으로 이동 중, 금동이가 허술한 줄을 풀고 밖으로 내뺀다. 내빼는 그놈을 보면서 이삿짐을 나르는 사람과 금동이에 대하여 몇 마디를 주고받았는데, 그만 금동이를 가져가라고 말을 뿌렸다. 그렇지 않아도 요즈음 금동이에게 식구들이 애정은커녕 관심을 둬 주지도 않는다. 그리고 개털이 집안 구석에 날리고, 오줌을 아무 데나 갈겨 냄새 때문에 신경을 쓰던 중,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것이다. 한 번 집을 나가면 종일 있다가 들어 오는데. 헤어짐의 운명이랄까? 금동이가 오늘따라 일찍이 집으로 들어 왔다. 조금만 늦게 들어 왔어도 이별은 없었을 것이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은 이러한 것. 이삿짐 차편으로 금동이를 보내고 집으로 들어오니, 목이 메며 눈믈이 흐른다.
금동이를 보내며
얼마나 울었는지
이별의 설움을
그대는 아는가.
그러니까 2004년 12월 12일이다. 아침에 퇴근하고 집 현관 유리문을 열고 거실에 들어서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나를 보면서 살을 떨며 소파 밑으로 숨고 있다. 강아지는 태어난지 한 달 만에 제어미 곁을 떠나 우리 집으로 온 것이다. 가족들에게 강아지의 이름을 공모하였는데, 아내가 작명한 금동이를 부르기로 하였다. 금동이는 금으로 만든 동이라는 뜻이다. 아들의 생일이 12월 12일인지라 금동이는 아들의 생일 선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금동이는 우리집과 인연을 맺은 것이다.
본래 나는 살가운 정이 없는 편이다. 가족들이 거실에서 키우자는 간청을 뿌리치고, 나흘인가? 거실에서 종이상자에 잠을 재우고, 야멸차게 금동이를 현관으로 내보냈다.
이유는 금동이의 배설문제였다. 그러한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그놈은 날이 밝으면 밤새 마려웠던 오줌을 참고 있다가 , 현관문을 열어주면 다리가 닿지도 않는 계단을 아장아장 뛰어 내려가 배설을 하였다. 지금도 금동이의 앙증맞은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마 그 모습은 평생 잊지를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부족하여 엄동설한에 현관 밖에 종이박스로 집을 만들어 내보냈다.
이유는 용변이 마려우면 하시라도 배출을 하라는 얄팍한 배려에서이었다. 그래도 금동이는 아침에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그때서야 비시시 집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가 볼일을 보는 것이다. 참으로 영특한 녀석이었다.
금동이는 누구나 그러하듯이 어렸을 적에는 가족들에게 무척이나 귀여움을 받았다. 그러한 녀석이 점점 성숙한 성견이 되면서 개털을 날리며, 가족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하더니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다.
그러한 금동이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풀어서 키웠다는 것이다. 개 줄에 묶어 보았는데, 그것도 못할 짓이라. 살가운 정은 주지 못하여도 집안에서나 자유로이 거닐게 해주고 싶어서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강제로 대문 밖에 내놓았는데, 조금만 옮겨 놓아도 바들바들 떨면서 한 발짝을 움직이지 못하던 놈이, 문이 열리는 틈만 나면 잽싸게 도망을 치는 것이다. 그리고 어렸을 적에는 한 곳에서 볼일을 보던 놈이, 이제는 집안 아무데나 오줌을 갈기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금동이를 한번도 매를 대지는 않았다. 말 못하는 짐승에 매질을 가하는 것은 차마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금동이와 내가 친숙해 진 것은 집 밖에서 아무거나 먹어 장에 탈이나 반죽음에 처해 있을때, 병원에 안고 가면서 이다. 나를 쳐다보는 금동이의 애처로운 눈망울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어렸을 적에 자전거에 금동이를 끌고 이마트를 갔다 오다가 잠시 끈을 풀어놓아 놓쳤는데 하루가 지나서야 용케도 집에 칮아온 금동이가 얼마나 반가운지. 그때는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과 구산에 같이 오르던 모습, 해 질 무렵 금동이를 데리고 구산에 운동을 가던 것이 이제는 옛 추억이 되어 버렸다. 등교하는 딸내미를 졸졸따라 예일여고 운동장까지 따라가 똥개라는 이유로 딸내미를 창피 주었던 녀석. 어렸을 적 주차장에서 잠을 자던 금동이의 배를 까치가 쪼아서 난리를 치던 일...그나저나 대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꼬리를 흔들며 앞다리를 들어 반겨 주던 금동이의 모습은 아련한 추억이 되어 버렸으니 마음이 허전하기 이를데 없다. 지금도 집에 있는 날은 금동이가 대문 밖에서 배회를 하는것 같아서, 대문을 열어 두고 동네를 한바퀴 돌기도 하지만, 금동이는 볼 수가 없다..
2009. 6. 8. 월요일. 13시32분 금동이를 보내다.
2004. 12. 12
2005. 4. 28
2006. 4. 23. 철규 서울과고 1학년 첫날 시험을 마치고 기숙사에서 집에 왔을때.
↘ 2007. 5. 15
2007.12.10
2008.3.31
2008.4.05
2008.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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