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3. 06. 21. 금요일. 맑음
장소 : 백석역 르메이에르 프라자 4층 퀸스웨딩홀
송별사
계사년의 붉은 해가 동천을 붉게 물들인지가 엊그저께 같은데, 어느덧 유월의 장미가 작렬하는 태양을 받으며 피고 지고 있습니다.
꽃 중의 꽃. 장미의 피고 짐이 어디 한 두 번인가요. 꽃이야 피고 지건, 세월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흐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세상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담장 너머 저쪽의 삶은 어떨까? 호기심을 갖고 가좌역에서 원당역에 들어와 이용원역장님과 한 솥 밥을 먹은 지 10달밖에 안되었는데도, 아주 오랜 세월을 동고동락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역장님이 저희 원당역 식구들에게 살가운 정과 애정을 듬뿍 주셨기에 그러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찌 하여야 하나요. 역장님에게 사랑을 받기만 하고 보답을 드리지 못하고 보내 드려서요. 미안하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1974년 4월 30일 홍안의 스무 살 청년이 부산진역에 첫발을 내딛은 것이 꿈결 같은데, 쏜살같은 세월에 이제는 귀밑머리에 흰 머리칼을 보이며 2013년 6월 30일 원당역에서 39년 2개월이라는 파란만장한 철도원의 생활을 마감하시네요. 역장님! 감개가 무량하시겠습니다. 어찌 그 세월을 짧은 말과 글로 표현을 다 하시겠습니까? 집으로 돌아가셔서 사모님과 밤마다 베개머리에서 쌓다 헐었다 만리장성을 쌓으시며 운우의 정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제가 바라본 역장님은 근래 보기 드문 역장다운 역장이었습니다. 부디 담장너머의 세계에서도 여태껏 하신대로 하시면 늘 존경과 찬사를 받으리라 봅니다
새로운 담장 너머로 가시는 역장님을 뵈오니 가슴이 울컥하며 눈물이 앞을 가리는데 이것은 무슨 조화입니까? 있을 때 잘 했어야 했는데, 그러하지 못한 회한이 나를 억누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개인적으로 저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으시더라도 관용을 베풀어 용서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어쩌면 제가 아무 탈 없이 원당역에서 근무하는 것은 역장님과 직원들의 보이지 않는 도움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떠나는 이 정녕코 다시 오마 기약해도, 어디 그것이 그리 쉽겠습니까? 원당역 식구들은 그저 옷깃을 적시며 역장님을 보내드립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늘 행운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행복하십시오.
2013. 6. 21.
박 노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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