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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기] 그대에게 가는 길 (11/3. 일체무대장님, 삼각산 향로봉)
그대에게 가는 길
‘느리게 길을 걷고 싶다.’
이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일체무대장님이 산행 공지에 쓰신
이 짧은 문장 안에는
‘느림의 미학’이 들어 있었습니다.
느리게 길을 걷는 다는 것은
한발 한발 천천히
내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일 겁니다.
느리게 걸으며
살갗을 스치는 바람으로 온 몸을 목욕하고
사락사락 나뭇잎들의 춤사위로
내 마음을 청소하고
숲이 뿜어내는 맑은 공기로
내 안의 텁텁한 것들을 순하게 정화시키는…….
느리게 걸으며
그대에게 다가가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인지 모르겠습니다.
역사 안에서 양지님을 만나 불광역 2번 출구로 나가니
많은 분들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반가운 얼굴들.
처음 만날 때는 어색했던 얼굴들이
어느새 친근하고 정겨운 얼굴들로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더욱 반가운 얼굴은
은수님과 하빈이님이었습니다.
그대는 어쩌면 질투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그들의 얼굴이 더 반가웠냐고 투정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대는 ‘첫사랑’의 느낌을 아주 잘 알고 있겠지요.
말하자면 그 두 분은
내겐 ‘첫사랑’과 같습니다.
아름방에 가입하고 처음으로 참석했던 관곡지에서
그들을 처음 만났으니까요.
보고파하고 그리워만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것일까요.
내 그리움이 홍시처럼 익을 즈음이었으니
두 분과의 만남이 더없이 행복하였습니다.
우리는 10시 40분께 불광역을 출발하여 거북샘을 향해 걸었습니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잎들이 떨어져
바람이 불때마다 사락사락 소리를 냈습니다.
나는 은수님과 팔짱을 끼고 대장님과 알프스님 뒤에서 걸었습니다.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두 명씩 짝을 지어 걸어오고 있을 듯 하였습니다.
둘이 팔짱을 끼고 걷기에, 혹은 둘이 손을 잡고 걷기에
참 좋은 길이었습니다.
우리는 조금 오르다 공터에서 대장님의 호명이 따라
한명씩 인사를 하고 체조를 하였습니다.
일체무대장님은 산행 코스에 대해 짧게 설명하셨어요.
혼자 가시면 두 시간 코스인데
초급 산행이라 네 시간으로 잡았다고 하셨습니다.
공지에서처럼 정말 느리게 산에 올랐습니다.
왕초보라 말하는 내가 느리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 생각 또한 나의 오만이었음을
얼마 가지 않아 깨닫게 되었습니다.
평지의 느린 걸음이 오르막이 시작되면서
힘들어졌으니까요.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헐떡거리며 나는 겸손을 배웠습니다.
한 시간쯤 오르자 향로봉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대장님께서는 알프스님이 계시니
초급산행이지만 일단 가봐서 향로봉에 오르자고 하셨어요.
알프스님은 릿지를 아주 잘 하는 분이라고 했어요.
이번에 160킬로미터 울트라 산행을 마쳤다고도 하셨습니다.
향로봉 앞에서 의견이 분분하였습니다.
향로봉에 오를 사람과 우회할 사람을 두 팀으로 나누자는 의견이었지요.
대장님께서는 향로봉에 오르는 코스가 여러 개 있는데
제일 쉬운 코스로 다 같이 오르자고 하셨고
알프스님도 한 산행 팀이 둘로 나뉘는 건 안 좋으니
쉬운 코스로 다 함께 가자고 하셨어요.
우리는 가파른 향로봉을 바라보며 쉬운 코스를 찾아 우회하였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가파른 바위 사이를
오르고 있었어요.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했습니다.
나는 처음으로 흐뭇한 일을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대는 그 정도가 무슨 흐뭇한 일이냐고
웃어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흐뭇한 일이란
내가 누군가의 손을 잡아 주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늘 도움만 받았는데
내가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까치놀님은 이번이 다섯 번째 산행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인지 매우 힘들어 하셨습니다.
나는 향로봉을 우회 하면서 까치놀님 뒤에 따라갔어요.
자칭, 후미대장이라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물론, 내 뒤에서는 오리온님과 폼생폼사님이 후미를 보고 계셨습니다.
까치놀님이 바위에서 내려올 때 내가 손을 잡아 주었지요.
까치놀님은 모르셨겠지만 나는 흐뭇하였습니다.
나도 누군가의 도움이 되 줄 수 있다는 것이 말입니다.
우리는 전망 좋은 바위에 올라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넓은 장소가 없어 다 같이 앉을 수가 없었어요.
할 수 없이 둘로 나누어 자리를 폈습니다.
나는 점심을 먹기 전 아름다운 풍광에 마음을 빼앗겨
바위 끝으로 가 아름다움을 내 안에 담기에 바빴습니다.
저기는 미인바위,
저기는 로봇 바위,
저기는 왕관 바위, 저기는 비봉.
알프스님은 손가락으로 바위들을 가리키며 알려주셨어요.
왕관바위와 비봉 위에
사람 몇이 개미처럼 꼬물거렸습니다.
능선 아래로 단풍이 싱그러웠습니다.
얼마 전에 내린 비로 목을 축인 나무들의 싱그러움 이었겠지요.
비록 울긋불긋 찬란한 옷을 걸치진 않았지만
그래도 참 아름다웠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폼생폼사님이 선물이라며 내게 무언가를 내미셨어요.
열어보니 주석컵이었습니다.
예전에 수리산 산행에서 맥주를 얼려놓은 주석컵에 마시면
시원하고 맛이 좋다는 말을 주고받았는데
그때 생각이 나서 내게 선물을 준비하신 모양입니다.
뜻밖의 선물이라 놀랐고, 감사했습니다.
참고로, 폼생폼사님은 전에 생맥주집을 운영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맛난 점심을 먹고 바로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곧바로 시작되는 오르막길은 힘들었지만
얼마 오르지 않아 향로봉 정상이 나왔어요.
향로봉에 올라 비경을 감상할 시간도 없이 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향로봉에서 공룡능선을 타고 내려가는 길이 아찔했기 때문입니다.
알프스님은 공룡능선 중간쯤에 서서 선두를 도와주고 계셨습니다.
나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대장님께 못 가겠다고 말했어요.
대장님은 어렵지 않은 곳이니 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
은수님은 걱정 할 것 없다고, 갈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 넣었지만
내 가슴은 사정없이 두근거렸고
다리는 저절로 떨려 왔습니다.
공포심……, 예전의 어떤 장면이 오버랩 되면서 두려움이 엄습해왔습니다.
뒤에서 가시나무님이 무서우면 같이 우회하자고 하셨어요.
하지만 대장님과 은수님은 할 수 있다고,
릿지화를 신었으니 충분히 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앞을 보니 처음 산행하는 분들도 잘 가고 계셨기에
나는 용기를 내어 공룡능선을 밟았습니다.
앞에서는 대장님과 청솔님이
뒤에서는 은수님이 나를 보살펴주셨고
아래서는 폼생폼사님이 도와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공룡능선을 통과하고 나니
감사하기도 했고 안도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가시나무님도 그 길이 무서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에게 우회하자고 한 것인데
앞서 가더라고 했어요.
내가 갈 때는 대장님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풀빛님 여기 밟아요.
풀빛님 여기 잡구요, 하면서 친절히 도와주고는
가시나무님이 갈 때는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더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남자가 되어가지고 무섭다고 엄살을 부릴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하였다는 거지요.
그 얘기를 들으며 한참을 웃었습니다.
우리는 이름모를 바위에서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앞에는 응봉능선이 보였고
그 뒤로 의상능선이,
그 뒤로는 아스라이 백운대가 보였습니다.
사모바위 앞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앞의 치마바위 소나무 아래에도 사람 몇이 앉아 있었구요.
자연의 품에 든 인간 또한 하나의 자연이었습니다.
그대는 웨딩바위를 아십니까.
웨딩바위라는 이름은 바위의 경사가 가파라서
둘이서 손을 잡고 걸어야하는 바위를 말하는 듯 합니다.
그래서 그 이름으로 불리는 바위가 곳곳에 있는 모양입니다.
하산하는 길
나는 웨딩바위를 보고 놀랐습니다.
그렇게 넓고 커다란 바위가 숨어있었다니,
삼각산은 참으로 많은 것을 품어 안은 산임이 분명했습니다.
웨딩바위를 내려오며 하빈이님과 은수님, 그리고 거산님의 대화가
어찌나 재미있던지
우리의 웃음소리가 산자락을 울렸지요.
우리는 선림매표소 쪽으로 하산하면서
마당바위에 앉아 간식을 먹었습니다.
먹을 게 너무 풍성한 탓인지
모두들 배부르다고 야단이었지요.
거기 앉아 있으니 우리가 걸어왔던 능선이
한 눈에 보였습니다.
까치놀님은 걸어왔던 길이 꿈만 같다고 하시며 둘러보았습니다.
일체무대장님이 솔지대장과 처음 이곳에 와보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눈빛이 어떤 추억 하나를 떠올리는 듯 하여
정겨워보였습니다
조용한 숲길에 새소리가 참 좋았습니다.
우리는 넓은 공터에 모여 다시 한번 닉네임을 소개하며
3시 40분에 산행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바쁘신 분들은 먼저 가시고
열 명이 남아 뒤풀이를 했습니다.
정다운 사람들과 앉아 있노라면
왜 그리 시간이 빨리 흐르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빈이님은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었어요.
얼마나 웃었던지 눈가에 주름이 서너 개는 늘은 기분입니다.
그리운 사람들이 많아 좋았고,
많이 웃을 수 있어 행복한 산행이었습니다.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미안했던 것은
내가 알고 있는 분들하고만 친하게 지낸 것과
처음 뵙는 분들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어요.
다음 산행에서는 처음 뵙는 분들에게도 살갑고 정겹게
대해야겠구나, 생각하였습니다.
안전하고 즐겁게 리딩해 주신 일체무 대장님 감사합니다.
다섯 번째 리딩, 정말 훌륭하셨어요.
사진 찍느라 수고하신 유리님, 알프스님, 오리온님 감사합니다.
공룡능선을 오를때 산우님들께 도움을 주신
청솔님, 청솔2님, 알프스님, 폼생폼사님 감사합니다.
총무를 보신 은수님 수고 많으셨어요.
함께 산행하신 19인의 산우님들 반가웠습니다.
님들과 함께해 행복한 산행이었어요.
모든 님들
다음 산행에서 뵐 때까지
늘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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