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詩와 散文,

큰누님 박씨 묘지명

一切無 2021. 6. 12. 17:34

 

 

 

 

유인孺人 휘諱 모某는 반남潘南 박씨朴氏인데, 그 동생 지원趾源 중미仲美가 다음과 같이 묘지명을 쓴다.

 

유인은 열여섯에 덕수德水 이씨 택모宅模 백규伯揆에게 시집가 딸 하나와 아들 둘을 두었으며 신묘년辛卯年(1771) 9월 1일에 세상을 뜨니 나이 마흔셋이었다. 남편의 선산은 아곡鴉谷인바 장차 그곳 경좌庚坐 방향의 묏자리에 장사 지낼 참이었다.

 

백규는 어진 아내를 잃은 데다 가난하여 살아갈 도리가 없자 어린 자식들과 계집종 하나를 이끌고 솥과 그릇, 상자 따위를 챙겨서 배를 타고 산 골짝으로 들어가려고 상여와 함께 출발하였다.

 

나는 새벽에 두뭇개의 배에서 그를 전송하고 통곡하다 돌아왔다.

 

아아! 누님이 시집가던 날 새벽에 얼굴을 단장하시던 일이 마치 엊그제 같다. 나는 그때 막 여덟 살이었는데, 발랑 드러누워 발머둥을 치다가 새신랑의 말을 흉내 내 더듬거리며 점잖은 어투로 말을 하니. 누님은 그 말에 부끄러워하다가 그만 빗을 내 이마에 떨어뜨렸다. 나는 골을 내 울면서 분에다 먹을 섞고 침을 발라 거울을 더럽혔다. 그러자 누님은 옥으로 만든 자그만 오리 모양의 노리개와 금으로 만든 벌 모양의 노리개를 꺼내 나를 주면서 울음을 그치라고 하였다.

 

지금으로부터 스믈여덟 해 전의 일이다.

 

강가에 말을 세우고 멀리 바라보니, 붉은 명정(銘旌)이 펄럭이고 배 그림자는 아득히 흘러가는데, 강굽이에 이르자 그만 나무에 가려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문득 강 너머 멀리 보이는 산은 검푸른 빛이 마치 마치 누님이  시집가는 날 쪽진 머리 같았고, 강물 빛은 그날의 거울처럼 보이며, 새벽달은 누님의 눈썹처럼 보였다. 울면서 그 예날 누님이 빗을 떨어뜨리던 걸 생각하니, 유독 어릴 때 적 일이 생생히 떠오르는데 그때에는 또한 기쁨과 즐거움이 많았으며 세월도 느릿느릿 흘렀었다. 그 뒤 나이 들어 우환과 가난을 늘 근심하다 꿈결처럼 흘쩍 시간이 지나갔거늘 형제와 함께 지낸 날은 어찌 그리도 짧은지.

 

 

 

 

떠나는 이 정녕코 다시 오마 기약해도

 

보내는 자 눈물로 옷깃을 적시거늘

 

이 외배 지금 가면 어느 때 돌아올꼬?

 

보내는 자 쓸쓸히 강가에서 돌아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