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1989年( 己巳年)

정자동 시절(1989년) 결혼식 - 1

一切無 2022. 2. 22. 16:44

 

 

청량리역에 근무할 당시 직장동료 소개로 아내를 만나 결혼식 올리기, 전 달에 천호동으로 함이 갔다. 당시만 하여도 함 파는 일은 결혼식에 있어서 통과의례였다. "함 사세요. 함" 떠들썩하게 동네가 소란스렀지만 사람의 정을 느끼는 정겹고, 즐거운 풍습이었다. 수원에 사는 어리숙한 사내도 이러한 통과의례를 하였다. 친구들이 함을 파는 과정에서 억센 기질도 부리지 않고 당시의 수준으로는 얌전하게 함을 팔았다. 시끌벅적한  술자리에서 장모님이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게 맴돈다. "우리 사위가 제일 잘 생겼네" 체면치례 말씀이지만 듣기는 좋았다. 당시의 나는 몸무게가 53kg으로 말라 볼 품이 없었다. 지독한 위염으로 고생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아내와 살면서 한때는 76kg까지 나갔다. 아내를 잘 만나 지금까지 아무 탈 없이 살고 있으니 고맙기 그지없는 소중한 사람이다. 당신을 만나 고워요. 사랑합니다.

 

 

 

하늘이시여

내 님과 사랑을 맺어 

오래오래 끊어지지 않으리라.

 

 

 

 

 

 

↘ 1997년 12월 천호동에 함 가던 날

 

 

 

 

 

 

 

 

 

 

 

↘ 1998년 1월 28일 토요일 오후 2시에 한일예식장에서 결혼식.

 


식을 올리는 그날 엄청 추웠다. 그날 예식장에 가족들은 버스로 왔고, 나는 혼자 화서역에서 전철을 타고 왔다. 두 시에 식을 올렸는데도 배 고픈지를 몰랐다. 한 끼만 걸러도 눈이 휑하던 사람인데. 예식을 한 번이라도 연습을 하고 갔어야 했는데, 주위에서 한 마디도 보탬을 준 사람이 없었고 자신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신랑 입장에 왜 그리 서둘러 걸어 하객들의 폭소를 받았는지. 그리고 색시한테 따뜻한 말 한마디도 건네지 못하였는지.

 

 

 

 

 

 

 

 

 

 

 

 

 

 

 

 

 

 

 

 

 

 

 

 

↘ 폐백을 드리고

 

 

 

 

 

 

 

 

↘ 예식을 마치고 김포공항을 가는 중에 휴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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