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둔동 9

서둔동 시절(1992년 - 2)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다른 문들이 열린다.그러나 우리는 대개닫힌 문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우리를 향해 열린 문은 보지 못한다.              -헬렌 켈리    ↘ 1992. 6. 12    광교산에서 ↘ 92. 8. 15  광릉수목원에서↘ 92. 9.17   외가에서  ↘ 소연과 ↘ 예비 신랑 넷째 고모부와  ↘ 92. 11. 22   넷째 고모 결혼식장에서(대구)   ↘ 92. 11. 30  ↘ 92. 12. 5  ↘ 92. 12. 12. 토요일    철규 두 돌  ↘ 92. 12. 17. 목요일    혜민 세 돌   서둔동은 너희들이 태어나 흙내음을 맡으며 자란 곳이다. 너희들이 너무 어려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을 것이다. 별거는 아니지만 너희들이 결혼하여 아이가 태어나면 키우면서 블로그를..

서둔동 시절(1991년 - 3)

아버지 회갑연을 집에서 하였다. 나름 없는 살림에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하였는데, 아버지에게 끝내 여쭙지는 못하였다. 아버지 기쁘셨나요. 8개월 된 철규를 보면서 회갑연을 치느라고 수고한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1991. 8. 10(음 7.1). 토요일   ↘ 1991. 9. 3아내와 치악산에 올라.밤새 철규가  얼마나 울어대는지 아내와 나는 선잠을 잤다. 보채는 아들을 어루만지던 아내는 어떠했을까? 수원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원주에서 내려 치악산행 버스 타고 매표소에서 내려 치악산을 오른 것이다. 왕복 6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치악산을 다녀온 것이다. 치악산 비로봉에서 만난 노부부의 산행에 감탄을 하였다. 나도 저 나이가 되면 아내와 함께 산행을 할까? 물음표를 던졌다. 산행을 마치고 아..

서둔동 시절(1991년 - 2)

샘물처럼맑은 아가의 웃음소리에나의생각도 맑아진다. 혜민이는 유난히 "까르르" 웃기를 잘했다. 아직도 너의 웃음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 경인회 야유회(남이섬)   ↘가방을 보니 출근 전, 아내는 철규 예방접종하러  ↘처음으로 가족사진(서울농대에서)  ↘1991. 6. 25 촬영    ↘ 동생(혜선, 선비)들과 삼성산 사진 가족 사진방으로 이동 ↘ 91. 8. 5.  외가에서

서둔동 시절(1990년 - 2)

혜민이가 태어나 첫나들이를 간 곳이 아산 현충사이다. 수원역에서 열차를 타고 천안역에서 내려 버스로 이동. 비가 내려 제대로 경내를 들러 보지 못하였다.   출발하기 전 집에서       ↘ 원천유원지(구로열차 수원지역 모임)   요즘 보기 힘든 기저귀에서 숨바꼭질 ↘ 집 윗길 포도밭에서(좌측은 서울농대 후문, 우측은 구운동 가는 길)  ↘ 둘째 처형 예식장에서     ↘ 사람들 있는 천막 가건물이 엄마가 늘 말하던 "사이다" 가게이고 엄마 바로 앞 트럭아래, 우리 가족이 머물던 집.  ↘ 딸내미 시원하냐?    ↘ 아버지 생신    음력 7.1 일인데 동생들이 모여 있는 걸 봐서 전날 8. 19. 일요일에 생신상을 차린 것 같다.      ↘ 제부도에서(으뜸회 모임)

서둔동 시절(1990년 -3)

걸음마 연습. 다른 아이보다 빨리 걸었지.    걷는 기쁨을 알았나?    ↘ 아빠는 이날을 잊지 못하지. 돌도 안된 아기가 40분 동안 동네를 돌았는데, 힘든 기색을 한 너에게 계속 걸음마를    재촉함을.  ↘ 댕글이(3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 혜민 첫돌(1990. 12. 09. 일요일)    낳을 동생으로 인하여 7일 앞당긴 생일상       ↘ 첫돌(1990. 12. 17. 월요일)   ↘ 동생 등장.     ↘ 2021. 12. 17. 금요일.  생일날   헤민 우리 나이로 벌써 서른세 살이네, 엄마는 당시 31살이었는데. 가는 세월은 막을 수가 없구나.

서둔동 시절(1992년 - 1)

아가들의 재롱. 그것으로 너희들은 엄마·아빠에게 보답을 다했다. 달리 너희들에게 바라는 것은 없으나 아래의 글을 명심하여 살아 가기를 바란다.손에 망치를 들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 손에 꽃을 들면 어떨까? 모든 게 나비로 보일지. 아름다운 눈보다 아름답게 보는 눈이 더 아름답고, 아름다운 입보다 아름답게 말하는 입이 더 아름다운 법이다. 늘 밝고, 맑은 생각을 하기를.   ↘ 92. 1. 5    엄마가 시집올 때 아빠를 위하여 구입한 신혼가구 의자.   ↘ 92. 1. 11    떠요^^ 그래 누나가 최고.  ↘ 92. 1. 13   아빠, 우창 오빠와 칠보산 호매실리에서. 아빠의 기억으로는 물 뜨러 갔던 거 같다.  ↘ 92. 1. 14 서울농대에서 ↘ 92. 1. 23 천안 독립기념관에서(미스터..

서둔동 시절(1991년) - 1

철규와 혜민, 나이는 햇수만 다르지 날로 따지면 360일 차이가 난다. 혜민이와는 달리 철규는 병원에 입원부터 퇴실까지 함께 하였다. 혜민이는 전근하여 받는 교습 중이라 출산휴가를 얻지 못하였다. 그 시절은 권위주의 시절이라 언감생시 따지지도 못하였다. 철규가 태아나는 시간에 순둥이 누나가 얼마나 울어 대는지, 아마 자기의 사랑을 동생에게 가는 서러움을 본능적으로 느꼈나 보다.    철규양력 1990. 12. 12. 수요일. 16 : 25(경기도청 아래 고려병원)음력 1990. 10. 26. 수요일. 庚午年   ↘ 누나 첫돌에   ↘ 1991. 1. 2. 수요일 (삼신할머니 상 차리기)   삼칠일.  아기가 태어나 3번에 7일이 지나는 걸 의미.    삼칠일 동안은 집에 외부인이 들어와선 안된다고 했는데..

서둔동 시절(1990년)

12월은 아이들 생일이 있는 달이다. 즉 귀 빠진 날이 있는 달이다. 정상적인 아이는 머리부터 나오는데, 아이의 머리는 어깨보다 더 크다. 귀가 빠진다는 것은 힘든 고비를 넘기고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것을 의미한다.애들아! 살아가면서 힘든 고비가 도처에 널려 있다. 유능한 항해자는 바람과 파도를 잘 이용한다.  유능한 항해자가 되려면, 통찰력과 혜안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갖추려고 부단히 노력하라.           서둔동은 수원 팔달산에서 보면 서쪽에 있는 언덕이다. 주변에 서호, 농촌진흥청, 농업작물시험장, 기상관측소, 서울대학교 농대, 딸기의 푸른지대가 있었다. 그곳으로 이사를 간 것은 대중교통(1번 시내버스 시종착)이 좋고, 전세 가격이 저렴해서다. 이 집을 구하려고 만삭의 아내가 애썼다...

서둔동

일시 : 2009. 08. 16. 일요일. 맑음 장소 :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아버지 생신날이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서호 건너 서둔동 둔덕을 바라보던 집사람이 서둔동을 다녀오자고 한다. 식구들과 저녁을 먹기에는 시간이 있어서 서둔동을 갔다. 차로 5분도 안걸리는 곳을 무려 19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 갔다. 서둔동은 나의 신혼 시절과 아이들이 태어나 잠시 머문 곳이다. 그때는 무척이나 목가적인 풍경을 자아낸 시골이었다. 윗 길 건너에는 과수원이 있었고, 조금 내려가면 서울농대 목장과 수원 딸기로 유명한 딸기밭 푸른지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가 사라지고 집들이 들어 섰다. 세월의 흐름에 변화가 된 것이다. 서둔동은 아이들이 태어난 곳이라 더욱 정감이 가는 집이다. 너른 마당은 길이 나있어, 길 옆이 바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