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7. 7. 25. 수요일. 비온후 갬
인원 : 일체무, 알프스, 뮤리엘, 채영, 나무꾼, 나무꾼2, 낭구, 산초, 아침햇살, 병정
코스 ;
-10:15 사당역 4번출구밖 1550-3번 직행버스
-10:35 57번도로 (하오고개 아래)
-11:00 석운동 하오고개(성남시계능선일주종합안내도)
-11:40 국사봉(540m)
-12:25 이수봉(547m)
-12:50 석기봉(582.3m)
-13:35 망경대(618m)
-14:00 매봉(582m)
-15:05 옛골
- 개성보쌈(뒤풀이)
- 4432번 버스(양재역)
- 총산행거리 11.2km
그사람은 천리밖에 있어도
흥은 한잔 술 속에 들어있네.
봄의 뜻은 분별이 없는데도
인정은 깊고 얕음이 있구나.
자신의 의중을 확실히 나타 내어라. 오늘 아침에 나의 내뱉음과 옆지기의 알아 들음이 서로 상이하여 언쟁이 있었다. 나의 생각과 옆지기의 생각의 관점이 다른 것이다. 우산이 화두였다. 나는 집앞 주차장을 생각하고 내뱉었고, 마누라는 구산역을 생각 하였던 것이다. 구산역에서 한시간을 기다렸으니 열이 받을만 하다. 덕분에 나도 제대로 먹거리를 먹지도 못하고 챙기지 못하였다. 집에와서 조금 든든한 식사를 하고 산길을 걸으려던, 나의 속좁은 생각에서 기인한 것이다. 앞으로는 매사에 명확하게 나의 의중을 표현 하여야 겠다.
하오고개 옆 아래에 있는 57번도로 마루에서 기사님의 배려로 알프스님, 아침햇살님, 채영님하고 내렸다. 씽씽 내달리는 차들로 조심스럽게 도로를 횡단하고 하오고개 정상에 올라 석운동 성남시계능선안내도 들머리에 이르니 먼저와 계신 산님들이 우리를 반겨주신다.
산행을 시작하려고 하니 내리던 보슬비가 제법 굵어진다. 산행 들머리에서 우비을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면서 그냥 비를 맞기로 하였다. 다행히 비는 그치고 운무가 자욱한 산길을 걸으니 오늘 산행은 선계를 노닐었던 것이다.
57번도로에서 하오고개로 올라오시는 앞프스님. 하오고개는 학의 혈에 해당되는 고개이름이다.
운중동에서 먼저 올라오신 산우님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분명히 우리보다 늦게 도착하여야 할 낭구님과 산초님의 모습이 보여서 우아하게 생각하였는데 운중동에서 택시를 타고 오셨다네.
가늘게 내리던 빗방울이 굵어지자 비를 피하기위하여 우중 채비를 하시는 산우님들.
산행들머리를 오르시는 산우님들.
원터마을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 이곳에 도착하니 비가 멈추며, 자욱한 운무가 서린다.
들머리에서 40여분에 오른 국사봉. 국사봉에 이르기 까지 산객들의 모습이 보이지를 않는다. 국사봉의 "국사"는 무속사회에서 "굿"을 한자로 표기할때 쓰는 이름이다. 그리고 마을의 진산을 가리킬대도 국사봉으로 많이 일컬은다. 아마 나라의 기원을 하였던곳이라 붙여진 이름 같다. 우리도 이곳에서 막걸리와 어묵, 옥수수, 양파즙으로 우리들의 안전을 위하여 굿을 올렸다.
한편으로는 국사봉은 고려 충신 조윤이 고려가 망한 후 이곳에서 옛 고려를 생각하면서 지낸 곳이라 하여 후세에 국사봉이라는 이름이 붙였다고 한다.
들머리에서 1시간 25분이 걸린 이수봉(554m). 이곳부터는 제법 산객들이 북적인다. 조선 연산군 때의 유학자인 정여창(鄭汝昌) 선생이 스승 김종직과 벗 김굉필이 연루된 무오사화의 변고를 예견하고, 한 때 이 산에 은거하며 생명의 위기를 두 번이나 넘겼다고 하여 후학인 정구 선생이 이수봉이라 명명하였다.
석기봉 가는중에 있는 헬기장.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자뭇 심각하다.
절고개 능선이다.
석기봉 아래에 있는 헬기장. 이곳에서 점심겸 간식을 먹었다. 국사봉에서 먹은것이 뱃속에서 채내리지도 않았지만 간식들을 너무 풍성하게 싸오셔서 우리들의 배는 포만감에 젖어야만 했다. 오늘 뒤풀이는 예고가 있었는데 어찌 하려고...
석기봉 오름 바로 아래 이정표에서
석기봉을 오르는 뮤리엘님과 병정님
만경대 정상은 통제구역이라 바로 아래 전망대에서
청계산의 주봉 망경대(望京臺)의 옛 이름은, 하늘 아래 만(萬) 가지의 경승을 감상할 만한 터라고 해서 만경대(萬景臺)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고려 유신들이 맥수지탄(麥秀之嘆)으로 고려의 도읍지 개성을 바라보던 곳이라 하여 망경대(望京臺)라 하였다는 것이다.
만경대에서 매봉가는 사이에 있는 혈읍재이다. 망경대와 매봉(583 m) 사이의 망경대쪽 안부를 혈읍재라 한다. 정여창이 무오사화를 피하여 이 산에 숨어들었을 때 스승인 김종직이 부관참시(剖棺斬屍) 당했다는 기막힌 소식을 듣고 피(血)눈물을 흘리면서 울면서(泣) 넘었다는 혈읍재(490m, 血泣재)이다.이것은 한강 정구 선생의 문집등 그 기록에 따른 것이다. 그 출처가 분명하고, 또 역사성을 지닌 이름으로서 의미있는 지명이 될 것이다.
오늘 산행의 마지막 구간인 매봉이다. 뒤면에는 청마 유치환의 시가 적혀있다.
내 아무것도 가진 것 없건마는
머리 위에 항상 푸른 하늘 우러렀으매
이렇듯 마음 행복 하노라
-행복-
합장을 하고 세번을 돌아야 청계산의 정기를 듬뿍 받아 간다는 돌문바위이다. 밑거나 말거나 좋다는데는 별수가 업나 보다. 산우님들이 다 돌면서 비는 소원은 각자가 다 달랐으리라.
이 팻말에서 청계골로 내려와야 옛골이다.
오늘 산행의 마지막인 옛골 입구이다. 이곳에서 실질적인 산행은 끝나고 새로 개업한 개성보쌈집에서 약주도 안하시는 나무꾼님이 거하게 뒤풀이를 쏘셨다. 산행의 백미가 힘들여 산정에 오르는 것이라면 뒤풀이에서 정담을 한잔술에 담아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맛도 그에 못지 않으리라. 지면을 빌어서 나무꾼님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다음 6구간에서 만날 토성옆 k2매장이 보인다. 오늘도 운무에 휩쌓여 끝내 제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청계산. 너를 다시 그리며 고려말의 충절 목은 이색의 시로 오늘의 산행을 접는다.
청룡산 아래 옛 절
얼음과 눈이 끊어진 언덕이
들과 계곡에 잇닿았구나.
단정히 남쪽 창에 앉아 주역을 읽노라니
종소리 처음 울리고 닭이 깃들려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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