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규야!
어제 아빠는 용문산 끝자락에 있는 백운봉을 다녀왔다. 흰 구름이 쉬어 간다는 백운봉. 과연 그곳은 큰 울음을 쏟아 낼만한 곳이다. 시원하게 탁 트인 양평의 벌을 가르며 장구한 세월을 도도히 흐르는 남한강. 그 강은 저무는 해를 담으며 넘실넘실 흐르고 있구나.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의 삶도 고정불변의 법칙은 없다. 하늘을 흐르는 흰 구름은 모였다가 흩어진다.
눈길을 북쪽으로 돌리니 용문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산마루와 그 너머로 너울너울 춤을 추는 산 너울을 바라보니 막힌 가슴이 뻥 뚫린다.
다음에 네가 영웅이 되어 잡무에 심신이 피곤하면, 이곳에 올라 마음을 가다듬어라. 어쩌면 용문에 아빠가 정성을 들여 지울, 우리의 보금자리를 많이 애용하여 주기를 바란다. 차지도 덥지도 않은 구들장에 높지도 낮지도 않은 베개를 베고, 그곳에서 푸근히 너의 꿈을 즐기기를 바란다. 그런데 홍매화는 나의 그러한 꿈을 알고나 있는지 당최 알 수가 없구나.
산행을 마치고 집에 오니 대문 우편함에 장문의 네 편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구나. 어찌나 반가운지, 반가움이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이르는 것 같다. 현관입구 거실에서 너의 안부를 홀로 읽고 있는데, 너의 어머니 홍매화가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온다. 너의 안부를 전하며, 고개를 들어 홍매화의 얼굴을 슬쩍 살피니 무척이나 흥분되어 있구나. 편지를 전하여 주니, 엄마는 훌쩍훌쩍 울음을 삼키며 너의 체온이 실린 글을 읽고 있다. 보기가 무척이나 좋구나.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가며 너를 키워온 엄마와 아빠의 차이가 여기에 있음을 너는 명심하라.
엄마와 아빠는 “나 잘 있어요” 다섯 자의 안부만 받기를 원하였는데, 장문의 편지를 받으니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철규야! 아침에 시원하게 배설을 하면, 몸이 산뜻하게 날아갈 것 같지. 너의 편지를 읽으니 한밤중에 무리하게 배변을 하여서 피가 묻어난다고 하는데 무척이나 걱정이다. 그것이 염증이 되어 치질이 되지나 않을 지, 되도록이면 아침에 배변을 하는 습관을 길들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너의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 빨래 감의 비누질은 바깥에만 살살 거품이 일 정도만 칠하여 주라고 한다. 아무튼 안쪽에는 비누질을 하지 말거라.
전화는 무조건 하여라. 그것도 인생의 한 방편이다. 네가 느끼는 두려움은 떠오르지도 않을 내일 태양을 그리는 것과 같다. 내일 태양은 내일에 맡기는 것이다. 두려움을 이기는 자만이 모든 것을 이루는 것이다. 어렸을 적에 무척이나 자신감에 차 있던 네가 아니냐?
그나저나 아빠는 너의 여드름 때문에 무척이나 속상하다. 어려서 무척이나 고왔던 너의 피부에... 어쩌면 사춘기에 돋은 여드름이 너를 무척이나 소침하게 만든 주범인 것 같아서 말이다. 여드름의 완치는 그저 세월의 흐름에 맡기는 수밖에 달리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벌써 네가 훈련소에 입소한지도 한 달이 넘었구나. 짧은 시간의 흐름이 너를 얼마나 변화시켰을까 무척이나 아빠는 궁금하다. 앞으로 2주일이 지나면 너를 보지 않을까 고대하면서, 만나는 그날까지 몸 건강히 지내라.
2010. 01. 24. 밤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