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0. 02. 21. 일요일. 맑음
권선동에 있는 코리아컨벤션웨딩홀에서 고종사촌 동생이 예식을 치렀다. 결혼식 피로연을 마치고 가족끼리 수원화성 연무대와 창룡문, 화성행궁를 거닐었다. 어려서 수원화성이 복원되기 전에 성을 한바퀴 걸어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연무대, 창룡문은 내가 살던 서문 밖과는 거리가 멀어서 서너번 밖에 가지를 않았다. 행궁은 내가 수원을 떠나 복원을 하여 처음으로 갔다. 어느덧 중년이 되어 잠깐이지만 부모님과 식구, 동생들과 함께 걸으니 가슴이 뭉클하다. 그래 세월의 흐름은 이러한 것이다.
예식장에서
수원시청 전경
이 강산 정기가 한 곳에 모여...어려서 수원의 날(화홍문화제) 기념식에서 많이도 불렀던 노래가락이다.
예식장이 붐 빌것으로 예상하고 수원시청에 주차를 시켰는데, 실상 가보니 정초라 그런지 주차장이 한산 하다. 차를 가지러 집사람과 수원시청을 가다가 맞은편 올림픽공원에서.
동북공심돈과 국긍 연습장
연무대에서 당겨본 팔달산의 서장대
서장대를 바라보니 이미자의 수원처녀가 떠오른다.
철쭉꽃 딸기꽃이 초원에 피면은
타네요 수원처녀 가슴이 타네요
달뜨는 호반길 님과 놀던길
첫사랑을 맺어놓고 멀리 떠난 사람아
서장대의 푸른꿈을 잊으셨나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장대(연무대)에서 바라본 광교산 시루봉과 형제봉
동장대(연무대)
동북공심돈에서
창룡문에서
행궁과 팔달산의 서장대
팔달산을 오른지가 언제인가? 지금 군대에 있는 아들이 두살때 진달래가 만발하였을 때이니까, 어언 19년이라는 세월의 강이 흘렀구나.
화성행궁 하마비
왕이 지방의 능원(陵園)에 참배할 때 머물던 행궁이 바로 화성행궁이라 할 수 있다. 화성행궁은 평상시에는 화성부 유수(留守)가 집무하는 내아(內衙)로도 활용하였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현륭원으로 이장하면서 수원 신도시를 건설하고 성곽을 축조했으며 1790년에서 1795년(정조 14∼19년)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수원에 이르는 중요 경유지에 과천행궁, 안양행궁, 사근참행궁, 시흥행궁, 안산행궁, 화성행궁 등을 설치하였다. 그 중에서도 화성행궁은 규모나 기능면에서 단연 으뜸으로 뽑히는 대표적인 행궁이라 할 수 있다.
관람시간이 얼마 남지를 않아서 행궁내부는 부모님과 큰동생과 세웅이만 관람을 하였다.
나의 젊음을 고스란히 보낸 수원. 그곳을 내 어찌 잊으리오. 수원성의 중심에 내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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