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2010년(庚寅年)

서오릉

一切無 2010. 3. 19. 17:12

일시 : 2010. 3. 17. 수요일. 흐림

 

서오릉이란 조선 왕조의 다섯릉 즉 경릉, 창릉, 익릉, 명릉, 홍릉을 일컫는 말이다. 오릉 이외에도 명종의 첫째 아들 순회세자의 순창원이 경내에 있고, 영조 후궁 영빈 이씨(사도 세자의 생모)의 수경원이 있으며, 최근 숙종의 후궁인 장희빈의 대빈묘도 이곳으로 이장 되었다.

서오릉은 우리나라의 여러 왕릉 중에서 동구릉 다음으로 왕실의 족분을 이루고 있는 사적지(사적 제 198호)이다.

몇일전  TV를 켰는데 화성에 있는 융건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매산초등학교  4학년으로 기억되는데, 봄 소풍을 용주사와 융건릉으로 갔었다. 그러고보니 내가 처음으로 대한 능이 융건능이다. 그후로 학생시절에 소풍때에 여러 곳의 능을 다녀 왔다.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서오릉. 그곳을 구산동으로 이사를 와서 그 해 부모님과 아이들을 대동하고 다녀오고, 6년 만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의 왕족들이 잠든 서오릉을 갔다.

그곳에 잠드신 왕과 가족들에게 여쭈어 본다.  살아생전 행복 하셨나요?

 

 구산동에서 벌고개를 오르면 대전차방호벽이 나오고 바로 고양시이다. 고양시로 조금 내려가면 서오릉입구가 나온다.

 서오릉 입구. 아스팔트로 이어지는 길은 군부대로 이어지는 길이다.

 

 

 

순창원  

명종(1545-1567)의 원자 순회세자와 공회빈 윤씨의 묘소이다. 순회세자는 명종 12년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3세에 승하했고, 공회빈 윤씨는 윤옥의 딸로서 선조 25년 (1592년) 3월 3일 승하했다

 

 

 

경릉 (위 덕종, 아래 소혜왕후)

덕종(추존)과 비 소혜왕후(추존) 한씨의 능이다. 덕종은 세조의 원자로 태어났으나 20세에 돌아가시고(1457) 뒤에 그의 아들 성종이 즉위 하면서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소혜왕후 한씨는 서원부원군 한확의 딸로서 월산대군과 성종형제를 두었으나 성종이 즉위한 뒤 왕비로 추존되면서 소혜왕후라 일컫게 되었다.

유일하게 조선왕릉중 왕과 왕비의 능의 배치가 바뀌었다. 왼쪽이 소혜왕후 능이고, 오른쪽이 덕종의 능이다.

 

※ 덕종(의경세자) :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맏아들(1438~1457, 20세)

                           -마애종 사랑에서 퍼옴-

 

 아비의 업보를 지고 꽃다운 스무 살에 종생한 의경세자. 산맥보다 더 듬직한 아버지의 아들이다. 어려서 부터 예절이 바르고 학문을 좋아했으며 특히 해서에 능했다. 그러나 철이 들고 세상 이치의 전후를 가늠할 정도가 되자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날이 갈수록 악몽의 강도가 세어진다.

  " 이노옴! 네 아비가 저지른 악행만큼 네가 받아라."

 하얀 소복에 뻘건 핏물을 뒤집어쓴 여인이 칼을 들고 달려든다. 세자는 비명을 지른다. 자리옷은 식은땀으로 축축하다. 내관이 들어와 세자를 흔든다. 야윌대로 야윈 세자의 몸은 부처의 고행상처럼 뼈만 앙상하다. 악몽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목을 조르고 사지를 비틀고 가슴팍에 비수를 꽂는다. 내의원에서 근기를 돋우는 탕재를 올려도 소용없다. 밤낮없이 세자 주변을 맴돌며 세자를 옥죄는 여인은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다. 아들을 원통하게 잃은 여인의 혼령이 저주의 굿판을 멈추지 않는. 맏아들에게 달라붙은 원귀를 쫓으려고 세조는 눈이 뒤집힐 정도로 애썼다. 자식에게 대물림된 업보에 억장이 무너진다.

원귀를 향한 분노가 치를 떤다. 현덕왕후의 무덤을 파헤쳐 유골을 바닷가에 흩뿌린다. 원혼을 달랜 것이 아니라 불타는 원귀한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백골마저 능멸당한 원혼의 저주는 하늘을 찌른다. 결국 세자는 식은땀을 비오듯 흘리며 가위 눌죽었다. 단종이 죽은지 한 달 후의 일이다.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세조는 아들의 시신을 안고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자식을 가슴에 담고 명당을 찾아 나섰다. 아비의 업장을 대신 지고 떠난 아들의 무덤을 위한 세조의 노력은 광적이었다. 세조는 이미 조선 초 내노라하는 풍수의 대가다. 세조는 기구한 팔자에 풍수살이 단단히 끼어 있다. 아버지 세종의 왕릉을 잡으러 다녔고, 형인 문종의 능 그리고 이제는 자식의 무덤마저 잡아야하는 기막힌 팔자다. 후일에는 며느리의 무덤에까지 관여했던 것이 세조의 풍수 팔자다. 택지 천거가 봇물처럼 쏟아지자, '상중하로 구별하여 올리라' 는 어명과 함께 통행 계획을 짜서 친히 현장 답사를 한다. 고르고 골라 조성된 것이 경릉이다. 서오릉은 세조가 마련한 세조 혈통의 선산 왕릉이다. 동구릉 지역과 맛먹는 55만평의 서오릉이 만들어지게 된다. 경릉은 조선 왕릉 중에서 가장 소박하다. 병풍석, 무인석이 없다. 아담한 민간 무덤 같다. 장식을 버리고 편안하게 잠들라는 교훈같다. 자식이 무슨 죄인가. 세조의 피울음이 흥건히 녹아 무덤을 쓰다듬고 있다.  

 의경세자는 한학의 딸 한씨(소혜왕후)를 아내로 맞아 1454년 월산대군을 낳고, 1457년에 자을산군(성종)을 낳았다. 경릉 정자각에서 바라볼 때, 왼쪽 높은 언덕에 묻혀 있는 이가 소혜왕후다. 그녀의 인생 역정 또한 만만치 않다. 15년간 왕세자비라는 딱지를 달고 살았다. 한창 나이인 21세에 과부가 되어 13년간 사가에서 살았다. 설움의 세월은 아들 덕분에 풀려나간다. 

남편 의경세자가 죽기 한 달 전에 태어난 차남 자을산군은 운 좋고 잘난 아들이다. 그녀의 나이 32세에 세조가 승하하자 시동생인 예종이 19세로 보위를 잇는다. 그런데 예종은 재위 1년2개월 만에 요절한다. 왕위 계승 결정권자는 세조비 정희왕후 씨다. 왕통 계승 후보자는 3명이다. 1순위는 예종의 직계 장남 제안대군, 2순위는 그녀의 장남인 16세의 월산대군, 3순위는 그녀의 차남 13세의 자을산군이다. 세조비 윤씨는 3순위인 자을산군을 전격적으로 결정해버린다. 왕이 승하한 다음 날 바로 즉위시킨 유래가 없어 조정 대신들의 논란이 들끊는다. 그것도 3순위자에게 덜컥 왕관을 씌웠으니, 분분한 논란은 논란일 뿐, 역사는 흐른다. 차남이 왕이 되자 사가에 머물던 그녀는 존엄한 궁궐로 모셔져 당장 '인수대비' 로 명명된다. 5년 후에는 왕대비로 봉해진다. 남편보다 48년이나 더 살다가 1504년 춘추 69세로 승하했다.

 조선 왕릉 중 비의 능이 왕의 능보다 더 높은 곳에 자라 잡은 것은 경릉이 유일하다. 석물도 더 풍성하게 차려져 있다. 이유이렇다. 지아비 덕종은 1457년 20세로 요절했고 당시 신분은 왕세자였다. 지어미 인수대비는 승하 당시 신분이 왕대비였다. 왕릉 자리 원칙은 남존여비가 아니라 군신관계 우선이다. 종묘사직을 위한 왕릉이기에 군신관계가 절대적이다.  실재 재위하지는 않았으나 후대 왕이 선왕을 기려 왕위를 올리는 것이 추존왕이다. 조선 개국 이후 최초의 추존왕이 덕종이다. 원귀에 시달리다 죽은 아비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겨 아들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1471년 덕종으로 추존했다.

 정희왕후는 왜 3순위자인 자을산군에게 왕관을 씌워 줬을까? 한명회, 신숙주 등이 정치적으로 결탁한 결과라는 설이 있으나, 세조비 윤씨의 내심을 달리 읽을 수도 있다. 왕실의 번영은 왕손의 다산에 있다. 덕종, 예종이 모두 20세에 요절했다. 왕의 건강이 왕실과 종묘사직의 건강이다. 비록 13세에 불과하지만 자을산군은 튼튼한 강골풍이다. 어느 날 뇌우가 몰아쳐 옆에 있던 환관이 벼락에 맞아 죽어 주위 사람들이 혼비백산했지만 자을산군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성종은 재위 25년1개월 동안 12명의 여인에게서 16남 12녀 도합 28명의 자녀를 생산했다.

 

대빈묘

조선 19대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어머니인 희빈(禧嬪, ?~1701) 장씨의 묘이다. 희빈 장씨는 어려서 나인으로 궁에 들어가 숙종의 총애를 받았다. 1686년(숙종 12) 숙원(淑媛)이 되었으며, 1688년 왕자 윤(경종)을 낳았다. 이듬해 숙종이 송시열 등 서인의 반대를 물리치고 윤을 원자로 책봉함에 따라 내명부 정1품 희빈에 올랐다. 그해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면서 인현왕후(仁顯王后)가 폐위되었고 윤이 세자로 책봉되면서 왕비로 책봉되었다. 1694년 서인들의 인현왕후 복위운동을 계기로 남인이 옥사를 일으켰으나 숙종이 오히려 남인을 제거하고 서인을 재집권시킨 갑술환국이 일어났다. 그해 인현왕후가 복위됨에 따라 다시 희빈으로 밀려났다. 1701년 민비가 병으로 죽자, 인현왕후를 무고했다는 서인의 탄핵을 받아 사약을 받았다. 숙종은 이후 빈을 비로 승격하는 것을 법으로 금했다. 원래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문형리에 장사지냈는데, 1969년 이곳으로 옮겼다.

대빈묘에서 홍릉으로 내려가다  뒤돌아본 고개마루

 

홍릉 

조선 21대 영조(1694-1776)의 원비 정성왕후 서씨(1692-1757)능이다. 정성왕후는 1704년 숙종의 둘째 아들 연잉군과 혼인했고, 병약하고 후사가 없던 경종의 뒤를 이어 연잉군이 영조로 등극하자 왕비에 올랐다.
영조는 왕비의 행장기(行狀記)에서 정성왕후가 43년의 왕궁생활 동안 늘 미소 띤 얼굴로 맞아주고, 윗전을 극진히 모시고 게으른 빛이 없었으며, 생모 숙빈 최씨의 신위를 모시는 데 정성을 기울였다고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영조는 정성왕후의 묏자리를 정하면서 능 오른쪽(바라보아 왼쪽)을 자신의 자리로 잡아놓으면서 쌍릉으로 예상하여 배치해놓았으나 영조 승하 후 정조는 영조의 능을 완전한 길지라고 주장하는 지금의 원릉 자리(동구릉)에 정했으므로 홍릉은 이처럼 한 쪽에 빈 채로 남아 있다.
영조가 원래 자신의 자리로 정해놓았던 자리는 비어 있고(우허제右虛制) 그 앞으로 석물이 놓여 있다.

 비호교

홍릉에서 창릉으로 가는 길에 있다.

 

 

창릉

8대 예종(睿宗, 1450~69)과 계비 안순왕후(安順王后, ?~1498) 한씨의 능이다. 예종은 세조와 정희왕후의 둘째 아들로, 의경세자가 요절하는 바람에 19세에 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불과 14개월의 짧은 재위기간 동안 남이(南怡)의 옥사가 일어나는 등 정치적 격동을 겪었다. 효성이 지극했던 예종은 세조의 승하를 너무 슬퍼한 나머지 건강을 해쳐 세조 때부터 시작한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완성했으나 반포하지 못하고 1469년 승하했다.
안순왕후는 장순왕후의 뒤를 이어 세자빈이 되었다. 창릉은 동원이강의 형식을 이루고 있으며, 석물의 배치는『국조오례의』의 예에 따랐다. 왼쪽이 예종릉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인순왕후릉이다.  
 

 

 

 

 

익릉

숙종의 원비 인경황후 김씨(1661-1680)의 능이다. 인경왕후는 광성부원군 김만기의 딸로서 현종 12년(1671)에 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며 숙종 즉위와 함께 왕비로 책봉되었다. 숙종 6년(1680) 경희궁에서 20세에 승하하였다. 

수경원 

영조의 후궁인 영빈 이씨의 산소이다. 영빈 이씨는 영조 11년(1735)에 사도세자를 낳았으며 영조 40년 69세로 승하하였다. 

 

 

 

 

 

 

 

 

 높 은곳은 신도로서 혼령이 다니는 길이고, 낮은 곳은 어도로서 왕이 다니는 길. 

 

 명릉

숙종(1674-1720)과 그의 계비 인현왕후 민씨 그리고 제 2계비 인원왕후 김씨의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는 쌍분으로 되고 인원왕후의 능은 옆에 따로 있어 같은 언덕에 배치된 형식이다. 숙종은 현종의 아들로 태어나 현종8년(1677) 세자로 책봉되었고 예론이 한창 일어나 장희빈을 중심으로 한때 인현왕후 민씨를 몰아낸 사건을 겪었으나, 상평통보를 주조하고 백두산정계비를 세우는 등 업적을 남겼다. 인현왕후 민씨(1667-1701)는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딸로 태어나 숙종 7년에 숙종의 계비가 되었다. 숙종 15년 왕자 균(뒤의 경종) 책봉 문제에 장희빈의 무고로 폐위당하였으나, 후에 장희빈이 몰락하면서 복위된(1694)뒤 35세로 승하하였다.

서오릉 재실과 주차장

 

삶에서 여백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특히 시간의 여백은 그렇다. 공간이 있어야 채울 수가  있지 않은가?

낮부터 빈 시간이 많이 있었는데, 진작에 서오릉에 도착을 하니 문을 닫을 시간이 두 시간 밖에 없어서 제대로 왕들의 잠드신 집을 보지 못하였다. 그래 꽃피는 사월에 다시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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