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2021年(辛丑年)

광화문광장 매장 문화재 삼군부, 사헌부 유구 관람

一切無 2021. 5. 23. 16:25

일시 : 2021. 5. 22. 토요일. 맑음

 

 

딸내미가 신청한 광화문광장 해설 프로그램  4 회차 현장 공개 관람을 다녀왔다. 고고학자 박승호 님의 50분간의 짧은 해설이 깃들인 관람이지만 문화재에 문외한으로 유익한 지식을 습득하였다.

지금의 경복궁과 세종로 일대의 도시구획은 1392년 조선이 개국되고 1394년 한양 천도가 이루어지면서이다. 1394년 12월 4일에 종묘와 궁궐의 공역이 시작되고, 이듬해인 1395년에 경복궁과 종묘, 관아 등이 육조거리와 완성된다. 조선 초기에 지어진 육조거리는 임진왜란 전까지는 존속되다가 임진왜란(1592년), 병자호란(1636년) 양란으로 육조거리의 양축에 건설되었던 관아 건물은 거의 모두 파괴되었다.
고종의 친부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1865~1868년)으로, 육조거리도 다시 형세를 되찾을 수 있었다. 육조거리는 일제강점기 1920년대 들와선 육조거리 양변에 건설된 장랑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일이다. 100년의 역사가 짧다면 짧지만, 오늘 관람한 유구의 현장과 지금의 주변을 보니 세월의 아이러니를 실감한다.

관람을 마치고 광화문, 정독도서관, 신무문에서 청와대를 바라보며 오늘의 일정을 마친다.

 

 

 

↘ 1906~1907년 사이 독일인 헤르만 산더가 찍은 사진

↘ 삼군부 유구현장


16세기 중엽에 창설된 비변사가 임진왜란 이후 군사문제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문제를 심의하는 국가의 최고합의기관으로 비대화하여 최고 정무기관인 의정부가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를 막고 의정부의 기능을 확대·강화하기 위해 1865년(고종 2)에 비변사를 의정부에 통합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군부를 분립시켜 군사기관인 삼군부를 그해 5월에 복설했다.

삼군부 유구는 견치석을 사용하였는데, 견치석은 일본이 사용하는 석축 양식이라고 한다. 한일합방 전후로 건축되지 않았는지 개인적인 생각이다. 지금의 세종대로보다 1m가 낮다. 
박승호 님이 해설하는 곳이 원래 해치상이 있던 자리이다. 통나무 2개가 예전에 있었던 전신주이다.  

↘ 13시에 오늘의 발굴 현장 관람을 설명하시는 박승호 님

↘ 삼군부 유구로 이동. 해치상이 있었던 자리에서 해설.

↘ 파랑색 선은 고종시대 유구, 분홍색은  조선 중엽 유구

↘ 사헌부 유구로 이동. 아곳은 세종대로보다 3m 정도가 낮다.  원인은 잦은 홍수와 양란으로 인한 화재로 본다.

↘ 석축은 견치석이 아니라 네모난 돌이다. 조선 초기의 유구이다.

↘ 육조거리에서 사헌부로 들어서는 자리

↘ 우물에 끼어있는 사기그릇 조각

↘ 사헌부 추정 문지

↘ 사헌부 우물
우물이 여기에 왜 있었나고 묻지 말라. 고고학은 있는 그대로 설명할 뿐. 

↘ 관람을 마치고 고고학 체험(모형유물 접합 복원)

↘ 광화문 좌 해치상이 있었던 자리에서 

↘ 관람을 마치고 광화문으로 들어 감

↘ 홍례문과 좌우 행각

↘ 동십자각

↘ 건춘문을 지나

↘ 정독 도서관에 들러

↘ 풍년 떡볶이에서 맥주와 팥방수, 떡볶이, 순대로 요기

↘ 총리 공관을 지나

↘ 청와대 정문을 바라보며

↘ 신무문에서 바라보는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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