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알프스/서울 55개산 종주

9구간 (독립문에서 장미동산)

一切無 2007. 8. 29. 11:58

일시 : 2007. 8. 24. 금수요일. 맑음

인원 : 일체무, 뮤리엘

         병정, 오아시스로, 하얀, 클릭, 나무꾼,  채영, 산빛, 산초, 낭구, 새가되어.

코스 :

-10:30  독립문역  4번출구밖

-10:50  독립문

-11:30  무악정

-11:45  봉수대(295.5m)

-12:28  무악재

-12:40  인왕사

-13:30  인왕산 정상(338m)           

-14:55  세검정

-15:35  탕춘대성 암문

-16:10   장미동산

 

         꽃은 화려하지만 피워있는 시간은 짧다.

         짧은 찰나에 현란한 춤을 추고 지는

         꽃들의 설음을 그대는 아시는지. 

 

나를 그냥 내버려 둬. 우리의 역사를 유구하다고 한다. 그러나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은 그것은 한낮 화무십일홍에 불과하다. 모든 것은 우리가 명명하는 이름만 바뀌었을뿐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수많은 꽃들이 피고지듯, 우리네 인간사도 태어나 죽는 과정을 반복할 따름이다. 정든이와 이별의 슬픔도 잠시, 나 또한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그리고 나를 슬퍼하는 이도 또한 그러한 과정을 되풀이 한다.

.  

독립문역 4번출구로 나오면  독립관이 있다. 그곳에서  낭구님이 백두산 여행에서 사오신 등산용스카프를 산우님들께 돌리신다. 그리고 새내기 새가되어님이 피로회복제 드링크를 돌리신다. 엄청 예의도 바르기도 하다. 하여튼 두분께 지면을 빌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여기서 인사를 마치고 독립문을 향하여...

 

자주독립국임을 국내외에 선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독립문(獨立門)>은 1897년 11월 한말 독립운동가 서재필(1866~1951)선생이 조직한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영은문'을 헐은 자리에 완공했다. <독립문>은 프랑스 개선문을 모형으로 했으며 높이 14.28M, 폭11.48M의 아치형 홍예문 모양이다. 내부 왼쪽에는 옥상으로 통하는 돌층계가 있고, 상단에는 '독립문'이란 한글과 '獨立門'이란 한자가 양쪽에 새겨져 있으며 '獨立門'이란 한자는 당시 중국인 청나라를 향해 있어 그 의미를 생각해 본다.
독립문 바로 옆의 돌기둥 두 개는 '영은문주초(迎恩門柱礎)'다. '영은문'은 조선 초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세운 '모화관' 문이었는데 1895년 2월(고종32년) 김홍집 내각 때 주춧돌 2기만 남기고 철거했다. 독립문과 영은문주초는 동남쪽으로 70M 떨어진 독립문 네거리에 있었으나 도로공사로 1979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 복원했다. 독립문은 사적32호, 영은문주초는 사적33호로 지정됐다.
<독립관(獨立館)>은 조선시대 때 중국 사신에게 영접과 전송연회를 베풀던 '모화관(慕華館)' 건물이다.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사용하지 않다가 1897년 독립협회의 개화운동과 애국계몽운동을 위해 사무실 겸 집회소로 이용됐다. 독립관의 원래 위치 또한 350M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이곳으로 옮겨져 복원됐다. 현재 독립관 내부에는 순국선열의 위패(位牌)를 봉안하고 있지만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게 해 창틈 새로 내부를 볼 수밖에 없다. 이 외에도 독립공원 안에는 '서재필선생동상', '3.1독립선언기념탑', '순국선열추념탑'도 함께 있어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애쓴 한말 격동기 민족운동가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극동아파트길로 들어서면 이진아기념 도서관이 나온다 그길을 따라가면은 영천사 가는 길이 나온다. 그길로 가도 안산을 오르는 길인데. 종주대는 영천사 가는 길 위로 산행의 들머리를 잡았다.

 앞에 보이는 계단길을 오르면

 산등성이 삼거리에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서 안산천 약수터로 진행.

 약수터를 지나면 무악정 옆에 세워진 안산 안내도가 나온다

 무악정과 옆에 있는 안내도길을 따라 오르면 봉수대가 나온다. 산객이 오를수 있는 실질적인 안산의 최고봉이다.

 봉수대에서 포즈를 (여종주대원)

 내사랑 삼각산을 배경으로. 시계가 흐려서 조금은 흐릿하지만 그런대로 멋진 풍경을 느낄수가 있다.

 낭구님과 한강을 벗삼아.

 무악재로 내려오는길에 봉수대암벽을 배경으로

 무악재 마루에서(병정님).

 

인왕산(仁旺山)과 안산(鞍山:毋岳) 사이의 안부(鞍部)를 넘는 고개로, 그 명칭은 조선시대 초기에 한양(漢陽)을 도읍으로 정하는 데 공이 컸던 무학대사(無學大師)의 ‘무학’에서 연유하는 것이라고 한다.
무악재는 한양의 북서쪽 경계이자 서도(西道:황해도 ·평안도의 통칭)에서 한양으로 들어오는 교통의 요충지가 되어 왔고, 특히 명(明) ·청(淸) 나라의 사절들이 한양으로 들어오는 길목의 관문 구실을 하여, 고개 밑(현재의 독립문 자리)에 사절을 맞는 모화관(慕華館) ·영은문(迎恩門) 등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한때는 이 '무악재'고개에 하도 호랑이가 많이 출몰하였던터라 고개를 넘기 위해 여러 사람을 모아서 함께 넘어 갔다고 해서 '모아재'라 부르기도 하였다.

 세월의 흐름은 이곳도 어찌할수가 없나 보다. 아이파크 공사현장으로 인왕사를 향한다.

 그러면 이러한 암장벽도 나온다.

 인왕사 일주문.

국사당 

중요 민속자료 제28호. 선바위가 도드라진 인왕산을 한참 오르다 보면 수많은 절간 위로 무겁게 자리한 국사당. 일제 침략기 때 본래 자리였던 남산의 터를 뺏기고 인왕산으로 밀려났던 탓인가, 국사당 몸채는 멀리 있는 남산을 마치 가까이 마주 보고 있는 듯이 조용히 남산을 향해 서 있다. 이성계와 호신신장을 모신 당. 태종대왕 때 삼신(天 山 水), 이태조, 무학국사와 제호신 신장(神將)을 모시고 있다.
뒤에 최영 장군, 나라 제군신과 군웅별상 등도 모시게 되었다.
이곳은 삼지부 국무당 대표자(동:각심사, 서:구파발, 남:우수현의 삼대만신)들이 모여서 시봉하고 국태민안을 빌던 곳이다. 이 당은 처음에 남산(지금의 팔각정 자리)에 있었으나 일제 침략기 당시 일본사람들이 국사당 자리에 일인신궁(日人神宮)을 세우고자 서기 1925년 7월에 국사당을 헐어 인왕산 현지에 옮겨다 세웠다.
국사당에 있는 무신도 12점은 인조 때의 것으로 추정되고, 16점은 고종 순종 때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국사당 위로는 무학대사가 죽어서 되었다는 선바위가 사람 모양을 하고 있고 인왕산 산정 가까이에 산신각과 칠성각이 나란히 붙어 있어, 서울 중심가를 한눈에 내려보고 있다.
이곳은 굿판이 뜸하게 벌어져도 산신기도를 올리러 오는 무속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가운데 하나이다

 

 선선바위

근처 국사당과 함께 무속신앙이 남아 있는 곳이다.

바위 아래에 여러명이 동시에 절을 할 수 있도록 길게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조선 태조 때의 한양 천도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일화 한가지.

한양 도성을 쌓을 때 선바위를 무학대사는 도성 안에 포함시키고자 하고,

정도전은 성 밖에 두고자 하였다. 이 때 정도전이 말하길

'선바위를 도성 안에 들이면 불교가 성하고, 밖에 두면 유교가 흥할 것'이라 하니,

태조가 정도전의 의견을 따르도록 하였다.

이에 무학이 탄식하며 이제부터 '승도들은 선비들의 책보따리나 지고 따라 다닐 것이다'라고 했다.

 

 

 범바위에서

 선바위에서 인왕산 정상가는 길

 

 

 인왕산 정상

이곳 정상에는 경비초소가 있다. 정상바위 뒤에있는 숲에서 오랫동안 한낮의 더위를 식히며 간식을 먹었다.

 정상을 내려서니 기차바위가 보인다.

 지나온 안산을 배경으로 뮤리엘님.

 기차바위를 내려오는 종주대.

 이러한 철망문과 부대초소터를 지나면 우측으로 우회하는 내림길이 있다. 그길을 따라 내려오다 좌측으로 올라야 세검정 가는 길이다.

 

 세검정 내림길을 내려오는 종주대. 날씨도 무덥고 혹시 산우님들이 짜증을 부리지나 않을까 하여 길아래 홍지문은 들러보지 않고 지나쳤다. 다음에 시간이 있으면 들러 보아야 겠다.

 세검정에서 상명여대길로 들어서야 탕춘대성 가는 길이다.

 

 

 이곳에서 한낮의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려고 얼음과자도 먹었다.(나무꾼님의 협찬...고맙습니다.)

 상명여대 정문에서 좌측길로 계속 오르면 탕춘대성등산로가 나온다.

 성벽길이 나오면 우측길로 진행하여야 삼각산 향로봉으로 간다.

 오늘 산행은 마침표 탕춘대성 암문. 다음 10구간은 이곳에서 계속 이어가면서 산행을 하여야할 들머리.

 이곳에서 30분정도 걸어서 장미동산으로 내려가야 불광역이 나온다.

 장미동산 내려오기전에 있는 미륵불.

 

무더운 날씨로 산행공지보다 예정시간이 많이 지났다.  짜증을 내시는 분들도 있다. 산길을 걷다 보면은 내뜻과 달리 산길을 걸을수 있다. 산길은 무엇인가? 바로 인생이다. 인생은 무엇인가. 즐기는 것이다.

 

세상사가 어디 내뜻대로 되나.

이 세상을 내 생각으로 보지 말고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