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0. 8. 8. 일요일. 맑음
올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3월 17일 해 질 무렵에 자전거를 타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의 왕족들이 잠든 서오릉을 갔었다. 꽃피는 춘삼월인데도 쌀쌀한 날씨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손이 시려 애를 먹었다, 그것을 보상하려는지 올여름은 아예 한증막이다. 그 더위에 민주와 처제가 오랜만에 우리 집을 왔다. 마땅히 갈 곳도 없어 민주의 역사 공부를 겸하여 집사람, 딸내미, 처제, 민주랑 서오릉을 다녀왔다. 그나저나 왕의 여인들에게 다시 여쭈어본다. 살아생전 행복들 하셨나요? 그것은 말할 수가 없다고요. 그러면 우리의 공주님들께 묻겠습니다. 혹시 왕의 여자가 되고 싶지 않으신지요,
서오릉이란 조선 왕조의 다섯릉 즉 경릉, 창릉, 익릉, 명릉, 홍릉을 일컫는 말이다. 오릉 이외에도 명종의 첫째 아들 순회세자의 순창원이 경내에 있고, 영조 후궁 영빈 이씨(사도 세자의 생모)의 수경원이 있으며, 최근 숙종의 후궁인 장희빈의 대빈묘도 이곳으로 이장 되었다.
서오릉은 우리나라의 여러 왕릉 중에서 동구릉 다음으로 왕실의 족분을 이루고 있는 사적지(사적 제 198호)이다.
정문에서 수경원으로 들어오는 길.
수경원 전경(뒤에 보이는 산이 앵봉)
영조의 후궁인 영빈 이씨의 산소이다. 영빈 이씨는 영조 11년(1735)에 사도세자를 낳았으며 영조 40년 69세로 승하하였다.
수경원에서
익릉을 향하여
익릉
숙종의 원비 인경황후 김씨(1661-1680)의 능이다. 인경왕후는 광성부원군 김만기의 딸로서 현종 12년(1671)에 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며 숙종 즉위와 함께 왕비로 책봉되었다. 숙종 6년(1680) 경희궁에서 20세에 승하하였다. 꽂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신 따님을 그리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상심이 깊었을까?
익릉의 봉분
정자각에서 우리집 뒷산 봉산을 배경으로
익릉을 떠나며
서오릉 산불감시초소
홍릉
조선 21대 영조(1694-1776)의 원비 정성왕후 서씨(1692-1757)능이다. 영조는 정성왕후의 묏자리를 정하면서 능 오른쪽(바라보아 왼쪽)을 자신의 자리로 잡아놓으면서 쌍릉으로 예상하여 배치해놓았으나 영조 승하 후 정조는 영조의 능을 완전한 길지라고 주장하는 지금의 원릉 자리(동구릉)에 정했으므로 홍릉은 이처럼 한 쪽에 빈 채로 남아 있다.
영조가 원래 자신의 자리로 정해놓았던 자리는 비어 있고(우허제右虛制) 그 앞으로 석물이 놓여 있다.
창릉
8대 예종(睿宗, 1450~69)과 계비 안순왕후(安順王后, ?~1498) 한씨의 능이다
비호교
대빈묘
조선 19대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어머니인 희빈(禧嬪, ?~1701) 장씨의 묘이다
경릉 (위 덕종, 아래 소혜왕후)
덕종(추존)과 비 소혜왕후(추존) 한씨의 능이다. 덕종은 세조의 원자로 태어났으나 20세에 돌아가시고(1457) 뒤에 그의 아들 성종이 즉위 하면서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소혜왕후 한씨는 서원부원군 한확의 딸로서 월산대군과 성종형제를 두었으나 성종이 즉위한 뒤 왕비로 추존되면서 소혜왕후라 일컫게 되었다.
유일하게 조선왕릉중 왕과 왕비의 능의 배치가 바뀌었다. 왼쪽이 소혜왕후 능이고, 오른쪽이 덕종의 능이다
순창원
명종(1545-1567)의 원자 순회세자와 공회빈 윤씨의 묘소이다. 순회세자는 명종 12년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3세에 승하했고, 공회빈 윤씨는 윤옥의 딸로서 선조 25년 (1592년) 3월 3일 승하했다
서오릉 재실에서
조금이나 더위를 피하려고 집에서 늦게 오는 바람에 숙종이 잠드신 명릉은 관람을 못하였다. 조금만 일찍 서둘러 왔어도 명릉까지 관람을 하였을 텐데, 민주에게 미안하지만 아쉬움을 남기며 조선의 왕족들이 잠드신 서오릉을 떠난다. 어쩌면 아쉬움이라는 여백이 삶의 묘미를 더해 주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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