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년째 살던 집을 팔게 된다. 파는 이유는 원해서가 아니라, 빚을 갚기 위해서이다. 나는 마흔여덟 생애 여태껏 가져본 집중에서 이 집이 가장 사랑하는 집이었다.
할 수 있을만큼 이 집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이 집을 짓던 해는 내 평생에서 가장 암흑했던 시기였다. 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평생을 바치려던 사업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으며, 정신적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기분이라 세상을 아예
등지고 산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입산하여 죄를 뉘우치는 생활을 하며 내가 평생에 해를 끼친 여러 중생, 은혜를 진 여러 중생을 위하여서 복을 빌자 하려 했으나, 아내와 어린것들에 의해 도로 이 세상으로 끌려 나왔다. 이 모양으로 끌려나와 시작한 것이 이 집을 짓는 일이었다. 이 집은 역사할때부터 평생을 보낼 생각이어서 죽는날까지 살면서
정 밥벌이가 안되면 닭을치며 살기로 생각까지 하였다.
그런데 청부업자를 잘못 만나는 바람에 초가집 계획을 기와집으로 바꾸어 짓게 되었는데, 여기서부터 계획이 틀어져서
집을 팔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초가집을 지었으면 아무도 탐을 안내었을텐데 기와집을 지어 탐내는 이가 많아지게
되어 마침내 집을 팔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이주일밖에 여기서 살 수 있는 기간이 남지 않았는데 이 집에서 살았던 그 기간을 회상하며 이 편지를 쓴다. 집을 지을 당시 집 터를 만들때부터 나는 법화경을 읽고있었고 그 몇 개월 전에는 금강산에서 설법을 들을 기회가 있었으며 또 몇 년 전에는 법화경을 처음 접하는 기회가 있었다. 집을 지을때에 불경을 읽으면서 나는 여덟살 먹은 어린 아들의 참혹한 죽음이 나로 하여금 불도로 이끌기 위해 세상에 다녀간 것이라 믿는다. 어쨌든 나는 집을 짓고 육 년 동안에 법화 행자가 되려고 애를 썼다. 그동안 노력해온 민족주의 운동이 피상적임을 알았고, 인격개조 운동이 무력한 것임을 깨달았으며, 십 수년간의 내 인격을 도덕적으로 개조하려는 계획에 역경이 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법화경을 읽게 되었으며 법화 행자가 되려고 애쓰는 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장차 완전한 성인이 될 것이라 스스로 확신을 하게 되었다. 법화경을 읽으면서 성인이 될 것을 믿었다.
사람들이 왜 집을 팔았냐고 하면 “집보다 더한 몸뚱이도 때가 되면 버리고 가는걸요” 라고 대답하면서 집을 파는것에
대한 미련을 내 업보라 여기고 집을 떠나는 것이 그런 팔자려니, 전생의 업보려니하고 생각한다.
‘길인주처시명당’이라고, 좋은 사람 사는 곳은 다 명당이며
‘천지개유아, 무사불태평’이라고 천지도 다 나로 말미암아 있으니 무엇이 태평이 아닐 것이며
‘도처무여락, 유문수탄성’ 이라고 이 사바세계에서 어디를 가든 편안한 고장이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입열반성’이라고 다른 데 좋은 데를 찾을 것 없이 내 번뇌를 다 불살라버리자는 말이다.
이 글귀들은 내가 고심하는 가운데 얻은 글귀이며 이들은 내가 집에 대해 갖고 있는 미련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깨닫게 하고 ‘더 좋은 집으로 가려는’ 근거 없는 욕심을 버리게 함이다. 닭들에게서 나온 이를 잡으며 한 중생 세계가
그 모든 욕심과 기쁨과 괴로움 속에서 살다가 망해나간 폐허를 보는것과 같음을 느끼며 방직 공장을 다니는 이웃집
삼철이에게서 “인생이란 고생이다” 라는 말을 듣는다. 여기서 깨달은 바 “내가 태어난 곳은 사바 세계, 참고 견디는 세계다. 내가 받는 것은 모두 다 내가 받을 것을 받는 것이며 이것을 안 받으려고 앙탈하는 것은 마치 나이를 안먹으려 버티는것과 같고, 이는 어리석음이요 또 앞날의 악업을 더 저지르는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나는 이 집보다 더 나은 집을 가지고 싶어하며 어리석은 욕심이 앞선 생각을 하고 있다. 이는 빚을 갚으면 집 지을 돈이 남지 않는 나에게 물론 헛된 공상일 뿐이다. 다른 새 집을 짓길 원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나는 가련하고 우둔한 중생이다. 이렇게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을 원하는 마음은 집 뿐만 아니라 만사가 다 그럴 것이다. 욕심이라는 마귀가 사람의 눈을 가리어서 이 분명한 진리를 못 보게 하고 서로 자꾸만 더 나은 것을 더 나은 것을 찾아 헤매게 하는 것이다. 번뇌가 끝이 없고 세상의 죄악이 그칠 줄을 모르는 것이다. 이 인생의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이 힘 많으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 밖에 없는데, 즉 제 욕심을 따르는 이기욕을 버리고 자비의 생활을 하는 길밖에 없는데, 이는 점점 더 “괴로움을 걸머지는 것” 이란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내 집에 대한 불만이 있었고 몸에 늘 병이 있었고 또 내 마음이 지저분하고 의기력이 약하고 도무지 맛답지 아니한 모양이라 이 사바 세계란 것이 결코 최선 최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더 좋은 방향으로 나가는 여러 세상과 더 흉악한 방향으로 나가는 여러 세상이 있으니 그것은 다 그 속에 사는 중생의 인연 업보라, 이 동네의 많은 집들에 사는 사람들도 그 집에 사는 것이 자신의 업보가 틀림없으니, 다 제가 들어 있을 만한 집에 들어 사는것이니 나도 내 집을 남의 손에 넘길 수도, 형편이 좋아져 보다 나은 집으로 옮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법장 비구는 서방정토 극락 세계를 이룩하셨는데, 이곳에서는 오직 즐거움만 누리게 된다고 한다. 사바 세계의 괴로움은 다 없는 이 우주간에 있는 세계 중 가장 잘된 세계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극락 세계에나 가기 전에는 괴로움 없는 인생이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집에 산다해서 불평불만을 갖지 말고 이런 남편이랑 산다 해서 불만 갖지 말고 이런 얼굴 갖고 산다며 불평하지 말고 다 전생의 업보니 생각하고 만족하며 살아야 겠다. 허나 아무리 얼굴이 숭하다 할지라도
좋은 재주를 가졌거나, 돈이 많거나, 벼슬이 높으면 그를 우러러 보게 되는데, 도둑이랑 같은 애꾸라도 나라에 공이라도
세우면 ‘독안용’ 이라 하여 눈 둘 가진 사람보다 더 존경을 받는데, 이것이 정말 이 세상 살아가는 ‘화장술’ 아니겠는가?
이 집에 온지 육년간의 소득이 있다면 저 못난 줄 깨닫고 사람에게나 물건에 대해서나 팔자에 대해서나 불평 불만은 없을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고로 내 집도 다들 왜 파냐고 묻지만 팔 때가 되니 파는 것이다라고 나는 믿는다.
만나는 자는 떠날 자 이듯이 떠날 때에 애착을 가져서는 안된다. 가는 구름같이 흐르는 물과 같이, 구름 가듯이 물 흐르듯이 걸리는데 없이 슬슬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바른 길이라 나는 믿는다. 이 집을 판다고 아깝다 그러는데, 이만한 풍경에
이만한 집에 육년이나 산 나에게는 그것이 매우 황송한 생각일 따름이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가기전 화단의 꽃들과
꽃나무들도 챙겨주고 신경 써준 이웃집 사람들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그들의 친절을 떠올리며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이다.
난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나를 위해주고 기쁘게 하여주었다. 하기야 우린 모두 형제들, 자매들이 아닌가, 우주속
지구는 조그만 티끌 하나에 불과한데 우주라는 큰 집속 작은 방 하나같은 지구에서 모여사는 우리는 얼마나 서로 불쌍히
여기고 도와야 하겠는가? 짐승과 새들 벌레와 나무, 풀도 다 마찬가지로 나와 한 식구이며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허나 모순으로 가득한 이 사바 세계에서는 우리의 적을 향해 싸울 수 밖에 없는 차별 세계를 생각하게 된다. 전쟁이 없기를 바라지마는 동시에 전쟁을 안할 수가 없다. 만물이 다 내 살이지마는 인류를 더 사랑하게 되고 인류가 다 내 형제요
자매이지마는 내 국민을 더 사랑하게 되니 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인연이 먼 이를 희생해야 할 수 밖에 없는, 불완전
사바 세계의 숙명적인 슬픔인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무차별 세계를 생각하며 이 차별의 아픔을 줄이려고 힘쓰는 것이다.
나는 이 중생 세계가 극락 세계처럼 사랑의 세계가 될 날을 믿는다. 내가 법화경을 날마다 읽는 동안 이 날이 올 것을 믿으며 지구상의 중생들이 모두가 사랑으로 변할 날이 올 것을 믿는다. 그러니 기쁘지 않은가? 내가 집을 팔고 떠나는 따위,
그까짓 것이 다 무엇인가? 뱀과 송충이, 지네, 그리마, 거미, 참새, 물, 나무, 결핵균 등이 모두 상극이 되지말고 총친화가
되는 그 날을 위해, 이 우주를 사랑의 것으로 만들 그 날을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시편 백편을 보면 기쁨으로
임을 찬송하고 감사하며 임의 뜰에 들어갈것이며 임을 고맙게 생각하고 그 이름을 칭송할것이며 인생을 이렇게 볼 때에
기쁨과 노래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어떤 근심 걱정이 있겠는가? 고로 나는 기쁨으로 이삿짐을 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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