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산행자료

[스크랩] 북한산의 봉우리 (14)... 비봉능선의 봉우리

一切無 2006. 9. 8. 19:31
 

〔비봉능선의 봉우리〕(14)



1. 개요


비봉능선은 칠성봉에서 남서방향으로 뻗어 향로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이다.

비봉, 향로봉 등 개별성이 강한 아름다운 바위봉이 있어 북한산 능선 중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능선 중의 하나이다.

능선에는 칠성봉, 석문바위봉, 승가봉, 비봉, 관봉, 향로봉 등 모두 6개의 봉우리가 있으나, 북한지에는 3개만이 기록되어 있다.


비봉능선 바위봉은 북한산 암릉산행을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능선으로 원효암릉이나 만경대암릉에 비해서는 난이도가 낮아 초급 암릉산행지로 인기가 있다. 그렇지만 향로봉 암릉은 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지역 중 하나로 반드시 경험자의 동행 그리고 장비를 갖춘 산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비봉능선은 북한산 순수비가 세워져 있던 비봉이 있고, 산 사면에는 승가사, 문수사 등 유서 깊은 사찰이 있는 등 역사의 자취를 많이 간직한 능선이다.



2. 석문봉우리 (60)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사찰(寺刹)편

-승가사는 비봉 동쪽에 있다. 향림사는 비봉 남쪽에 있다.

■ 북한지(北漢誌)의 사실(事實)편

-문수봉에서 한 가지가 서쪽으로 뻗어 나가 칠성봉이 되고, 칠성봉에서는 한 가지는 떨어져 내려가며 나한봉, 증봉, 혈망봉, 의상봉의 여러 봉우리가 되어 중흥동 수구에 이르렀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서쪽으로 달려가면서 승가봉. 향림사 후봉이 되었습니다.

  (훈련대장 이기하의 보고, 1710년)


나. 해석

■ 위 자료만 보면 칠성봉에서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비봉능선상에서 문수봉 다음으로 있는 석문봉우리를 승가봉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아래 자료의 승가봉에서 보듯 승가봉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는 만큼, 석문 봉우리는 자료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3. 승가봉(僧迦峯) (61)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사찰(寺刹)편

-승가사는 비봉 동쪽에 있다. 향림사는 비봉 남쪽에 있다.

■ 북한지(北漢誌)의 사실(事實)편

-문수봉에서 한 가지가 서쪽으로 뻗어 나가 칠성봉이 되고, 칠성봉에서는 한 가지는 떨어져 내려가며 나한봉, 증봉, 혈망봉, 의상봉의 여러 봉우리가 되어 중흥동 수구에 이르렀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서쪽으로 달려가면서 승가봉. 향림사 후봉이 되었습니다.

  (훈련대장 이기하의 보고, 1710년)

■ 東國與地備考의 三角山記 (19세기 편찬)

-문수봉의 서쪽 가지는 칠성봉이 되고, 거기서 두 갈래로 나뉘어 떨어져서 한 가지는 나한봉, 증봉, 혈망봉, 의상봉의 여러 봉이 되어 중흥동 수구에 이르고, 또 한 가지는 서쪽으로 달려서 승가봉, 비봉, 불암과 향로사의 후봉이 되었다. -문수봉---(중략, 내용 동일)--- 승가봉. 비봉. 불암과 향림사 후봉이 되었습니다.


나. 해석

■ 승가봉이란 이름은 여러 문헌에 나오지만 명확하게 위치를 표시한 기록은 없다. 오직 추론이 가능한 자료는 「승가사는 비봉 동쪽에 있다」는 표현이다. 승가봉은 승가사에서 유래한 봉우리 명칭임을 감안하면 비봉 동쪽에 있는 승가사의 약간 동쪽 뒷봉우리가 아닌가 추정된다.

■ 비봉 동쪽에는 승가봉이라 추정하는 봉우리이외에도 석문이 있는 봉우리가 있지만, 승가사와의 거리를 고려하면 현재의 승가봉이 기록상 승가봉으로 추정할 수 있다.

(문수봉으로 가면서 되돌아본 승가봉, 좌측이 비봉이다)



4. 비봉(碑峯) (62)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사찰(寺刹)편

-승가사는 비봉 동쪽에 있다. 향림사는 비봉 남쪽에 있다.

■ 북한지(北漢誌)의 사실(事實)편

-문수봉에서 한 가지가 서쪽으로 뻗어 나가 칠성봉이 되고, 칠성봉에서는 한 가지는 떨어져 내려가며 나한봉, 증봉, 혈망봉, 의상봉의 여러 봉우리가 되어 중흥동 수구에 이르렀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서쪽으로 달려가면서 승가봉. 향림사 후봉이 되었습니다.

  (훈련대장 이기하의 보고, 1710년)

■ 東國與地備考의 三角山記 (19세기 편찬)

-문수봉의 서쪽 가지는 칠성봉이 되고, 거기서 두 갈래로 나뉘어 떨어져서 한 가지는 나한봉, 증봉, 혈망봉, 의상봉의 여러 봉이 되어 중흥동 수구에 이르고, 또 한 가지는 서쪽으로 달려서 승가봉, 비봉, 불암과 향로사의 후봉이 되었다. -문수봉---(중략, 내용 동일)--- 승가봉. 비봉. 불암과 향림사 후봉이 되었습니다.

■ 윤정기의 三角山記 (1814~1879)

-북한산이란 한수이북의 산이니 곧 이(삼각산) 산이다. 마침내 산의 서쪽 기슭에 순수비를 세웠다. 지금은 그곳을 일러 비봉이라 한다. 


나. 해석

■ 비봉은 비봉이라는 이름 자체에 비가 있다는 뜻이 있다. 그리고 추사 김정희에 의해 밝혀졌듯이 진흥왕 순수비가 있던 봉우리로 현재의 비봉이 확실하다.

(향로봉능선에서 바라본 비봉)

 


5. 관봉(冠峯) (63)


가. 문헌

■ 東國與地備考의 三角山記 (19세기 편찬)

-문수봉의 서쪽 가지는 칠성봉이 되고, 거기서 두 갈래로 나뉘어 떨어져서 한 가지는 나한봉, 증봉, 혈망봉, 의상봉의 여러 봉이 되어 중흥동 수구에 이르고, 또 한 가지는 서쪽으로 달려서 승가봉, 비봉, 불암과 향로사의 후봉이 되었다. -문수봉---(중략, 내용 동일)--- 승가봉. 비봉. 불암과 향림사 후봉이 되었습니다.


나. 해석

■ 관봉이란 이름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는 구전으로 전해오는 명칭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 동국여지비고의 봉우리 표기 순서가 문수봉에 가까운 봉우리부터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비봉 다음의 봉우리는 불암이 관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 하지만 김윤우님, 민경길님 등 북한산에 관한 전문가(자료의 전문가, 산행의 전문가는 아님)들은 불암을 현재 홍지문 부근의 옥천암 아래 냇가에 있는 보도각백불로 해석을 하고 있다.

일관성 없이 갑자기 북한산 능선을 떠나 하천 근처의 바위를 불암으로 해석하는 자체가 논리에 맞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그 분들이 불암에 대해서는 이의를 별로 달지 않고 있는 점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 불암(佛岩)이란 부처님 바위로 해석할 수가 있으며, 나한봉과 같이 정상부위가 둥그스레하고 절벽의 대가 있는 봉우리를 부처님 형상의 바위라고 칭하는 점을 감안하면 관봉 역시 불암으로 해석하여도 무리가 없다고 판단된다.

■ 너무나 전문가들의 의견과 달라 정확히 결론 내리기 어려운 봉우리이다.


나. 해석

■ 관봉은 향로봉과 비봉 사이에 위치하는 암봉으로, 이 봉우리에서 작은노적봉으로 가는 능선이 갈라진다. 등산로 바로 옆에 위치하여 쉽게 올라갈 수가 있다.

(비봉으로 가며 되돌아본 관봉)



6. 향림사 후봉(香林寺 後峯) (64)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사찰(寺刹)편

-승가사는 비봉 동쪽에 있다. 향림사는 비봉 남쪽에 있다.

■ 북한지(北漢誌)의 사실(事實)편

-문수봉에서 한 가지가 서쪽으로 뻗어 나가 칠성봉이 되고, 칠성봉에서는 한 가지는 떨어져 내려가며 나한봉, 증봉, 혈망봉, 의상봉의 여러 봉우리가 되어 중흥동 수구에 이르렀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서쪽으로 달려가면서 승가봉. 향림사 후봉이 되었습니다.

  (훈련대장 이기하의 보고, 1710년)

■ 東國與地備考의 三角山記 (19세기 편찬)

-문수봉의 서쪽 가지는 칠성봉이 되고, 거기서 두 갈래로 나뉘어 떨어져서 한 가지는 나한봉, 증봉, 혈망봉, 의상봉의 여러 봉이 되어 중흥동 수구에 이르고, 또 한 가지는 서쪽으로 달려서 승가봉, 비봉, 불암과 향로사의 후봉이 되었다. -문수봉---(중략, 내용 동일)--- 승가봉. 비봉. 불암과 향림사 후봉이 되었습니다.

-향림사는 비봉 남쪽에 있었는데 지금은 폐사되었다.

■ 이덕형의 중흥산성 형세보고서 (1561~1613)

-문수, 승가, 향림 등의 절이 산허리에 나열해 있는데 우이동, 사을한리와 경성의 사현, 홍제원의 좌우 도로가 역력히 한눈에 들어옵니다. 


나. 해석

■ 향림사 후봉에 위치 파악의 관건은 향림사의 위치이다.

향림사가 바봉 남쪽에 있다는 표현과 문수사, 승가사와 더불어 산허리에 나열해 있다는 표현을 감안하면, 향로봉 남쪽에 위치한 포금정사터가 맞을 듯하며, 이숭녕님의 설 또한 향림사를 포금정사 자리로 비정하고 있다.

다만, 북한산의 역사지리를 펴낸 김윤우님은 향림담 위의 터에 향림사터가 있었다는 설(여러 복잡한 이론적인 근거는 생략)을 제시하지만 비봉의 남쪽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며, 탕춘대성을 넘어서 위치한 그 터는 같은 산허리라는 개념으로 부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어째뜬 학계에서는 향림사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며, 학자마다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향림사의 위치를 명확하게 판단할 수가 없다.

■ 향림사의 위치가 확인되지 않아 향로봉의 위치 또한 불분명하지만 문헌의 기록에 향림사 후봉이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점을 보면 「불암」 다음의 봉우리를 향로봉으로 추정 가능하다.

■ 향림사가 이렇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류는 고려시대 거란의 침략 시 태조 왕건의 관을 향림사로 옮겼다는 기록 때문이다.

(족두리봉에서 향로봉으로 가며 바라본 향로봉)


출처 : 북한산연가
글쓴이 : san001 원글보기
메모 :

'기타 > 산행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등산의 효과  (0) 2006.09.21
등산의 기본요령  (0) 2006.09.21
암벽용어  (0) 2006.06.08
산행의 왕도  (0) 2006.05.19
삼각산의 주요 봉우리  (0) 2006.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