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5. 14. 월요일. 비
"아버지"
언제나 전화를 드리면,
"노진이냐" 카랑카랑하신 목소리로 되물으시던 아버지의 다정다감한 목소리. 이제는 목놓아 불러도,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으니, 어이 하나요. 아버지!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이승에서 당신과 함께한 그 세월이 진정 꿈결이었나요? 차라리 꿈이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현실은 그러하지 않으니 하늘이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그러고보니 이승에서 저승으로 아버지가 소풍을 가신지가 어언 열흘이 흘렀습니다. 잠시 소풍을 가신줄 알고 있는데, 아직도 저희들 곁으로 오시질 않으시니 무슨 변고가 있으신지요? 아니면 감히 묻겠습니다. 그곳이 이곳 보다 좋으셔서 오시질 않으신지요. 제발 말씀해 주세요. "노진아! 살아생전보다 이곳이 좋아서 다시 내려갈 생각이 추호도 없다."라고 말입니다. 그래야 아버지를 보낸 저희들 마음도 편안하니까요. 살아생전 효도를 못해드려 죄송합니다. 불효자 엎드려 아버지에게 용서를 빕니다.
주마등처럼 흐르는 아버지를 향한 기억의 첫 편이 아버지의 등 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숟가락, 젓가락 4개를 달랑 들고 어머니, 저와 바로 밑의 여동생을 데리고 예산 대흥에서 수원 고등동으로 이사와 살 때지요, 아마 그때가 다섯살로 기억하는데, 제가 연탄가스 중독으로 아버지의 등에 업혀서 신새벽에 동네 한약방으로 갔었지요. 그때 아버지의 등에 흐르는 따스한 훈기를 오십이 년이나 흐른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리려고 하였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네요. 아버지! 아버지의 듬직한 등이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안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미안합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힘들다고 하더니 그말이 틀리지가 않았습니다. 아버지에 대하여 조금만 신경을 썼으면 아버지의 믿음직한 등에 기대어 당신이 그토록 애틋하게 바라보던 철규와 혜민이가 응석을 부릴 수가 있었는데... 저의 불찰과 불효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에게 못다한 효도를 어머니에게 백배만배 해드리겠습니다.
내 생명의 뿌리이신 아버지가 의식도 없이 20일 동안 산소호흡기에 의지한채 가쁜 숨을 내시며, 아무것도 드시지 못하고, 말씀도 못하신채 허망하게 영면하셨다. 짧은 세월이지만 얼마나 힘이 드셨나요. 모두가 제 잘못입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요. 그래도 불행중 다행이라더니 임종하시기 하루 전에 주치의 배려로 중환자실에서 일인실로 옮기고부터 말씀은 못하셨지만, 곁에 있는 가족들을 아시는지 눈을 크게 뜨시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바라보셨지요. 다시 한번 여쭙겠습니다. 혹시 어머니와 저희들을 알아 보시고, 저희들이 아버지께 한 말들을 알아 들으셨나요?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지만, 오신 그곳으로 돌아 가셨다. 2012년 5월4일 12시 정각. 의사선생님의 검안으로는 12시10분이다. 사망하신 곳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중부대로 166 (구 : 우만동 441) 동수원병원 605호실. 임종은 나, 집사람, 우창 엄마 셋이서 임하였다. 정확히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숨넘어가심을 보지 못하였다. 마침 소연 엄마에게 전화가 와서 통화를 하고 있는데, "아버지!" "아버님!" "오빠, 아버지가 돌아 가셨어. 어떡해?" 우창 엄마와 집사람의 오열로 고개를 돌려 아버지에게 다가가니 숨은 이미 멎었고, 맥박을 만지니 피의 흐름은 정지되었다. 간호원을 부르고, 도착한 간호원도 당황하여 의사선생님을 불러서 여러가지 검안을 마치니 10분이 경과 하였다. 직접사인은 뇌경색이다. 뒤늦게 도착하여 아버지의 임종을 못보신 어머니, 네명의 여동생들 마음은 얼마나 아파을까?
아버지는 향년 팔십이 세의 일기로 이승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팔십평생 힘든 일만 하시다 작년부터 일을 놓으신 아버지이시다. 올 설날에 세배를 드릴때만 하여도 한 오년은 강녕하실줄 알았는데, 그런데 신의 뜻에 따라 아버지는 제자리로 돌아 가셨다.
- 3월21일. 수요일 : 안산과 인왕산 산행을 마치고 뒤풀이로 술이 취하여 잠들어 있는데 밤늦게 주행 엄마
에게 전화가 옴. 아버지 수원 성빈센트병원 응급실에 계시다고... 병명은 모름
- 3월22일. 목요일 : 새벽 2시에 집으로 퇴원하셨다는 전화연락
다시 낮에 수원 성빈센트병원에 재입원 하셨다는 연락(병명은 뇌경색)
조퇴하고 수원으로 내려감
- 3월23일. 금요일 : 716호 병실로 이동(좌측 편마미)
- 4월02일. 월요일 : 아버지 퇴원
- 4월03일. 화요일 : 아버지 효정재활요양병원 310호 입원(반복성 치매로 인하여)
- 4월10일. 화요일 : 아버지와 이승에서 마지막 대화를 나눔
아버지 5층 로비에서 이발을 하시고 나서, 아버지가 추우신 것 같아서
"아버지 추워요" 물으시니 "추워" 하시며 나눈 말이 이승에서 아버지와 나눈 마지막
말일 줄 누가 알았으리오.(그날 이발만 해드리지 않았어도...)
- 4월14일. 토요일 : 아버지 의식이 없음(감기약과 수면제로 복용으로 기인한 줄 알았음)
- 4월15일. 일요일 : 아버지 산소호흡기에 의존
- 4월16일. 월요일 : 폐렴으로 판정되어 동수원병원 응급실로 이송하여 중환자실로 이동
- 5월03일. 목요일 : 아버지 중환자실에서 일인실 605호로 이동
- 5월04일. 금요일 : 12시 정각에 아버지 운명하시다.
아버지를 모신 곳
국립이천호국원 12구역 26그림판 3단 5칸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 노성로 260(대죽리 1085)
아버지 그러고보니 우리 가족들의 지난 삶도 슬픔과 걱정과 반목만 있던 것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이 더 가득한 단란한 가족이었습니다.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하더니 아버지와 같이한 오십칠년의 삶이 꿈결처럼 흘쩍 지나 갔습니다. 거부할 수 없는 유연한 우주의 법칙에 언젠가는 아버지와 헤어질 운명이지만, 그래도 막상 아버지를 보내시고 지난 날을 그리니 세월은 어찌 그리 짧은지요. 세월이 그저 무정할 뿐 입니다. 아버지! 당신이 좋아하는 소주를 올립니다. 술을 드시며 "어, 좋다" 늘 하시던 말씀처럼 이왕에 가시는 그 길. 흥겨운 발걸음으로 기분좋게 끝도 없이 끝도 없이 가시옵소서. 아버지 사랑합니다.
2012년 5월 14일. 월요일
불효자 노진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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