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9. 3. 4. 월요일. 맑음
인원 : 권혁춘, 김경희, 양미숙, 최부성
코스 :
- 인천 출발(10:10)
- 시안 도착(12:10)
(시안은 한국보다 1시간 늦음)
- 숙소(아이러브차이나) 13:30 -14:36
- 종루(지하철 2호선) → 소한(3호선 환승)→ 대당부용원역
- 대당부용원(15:36 ~17:35)
- 저녁(천하제일면)
- 대당부용원 → 대안역
- 대안탑(18:30 ~?)
- 지하철로 대안에서 종루로 이동
- 종루, 서안고루, 회민가(회족거리) 20:20 ~21:30
- 숙소(아이러브차이나)
시안 지도
영원히 평화가 지속되라는 의미로 과거 ‘장안(长安)’이라 불렀던 시안은, 비옥한 관중 평야의 웨이허(渭河) 강 이남에 위치해서 일찌감치 중국 문명의 발상지가 되었다. 주나라를 포함해 진, 한, 당 등 13개 왕조가 1,100여 년 동안 수도로 삼으면서 ‘도시 전체가 지하 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유적이 풍부하다. 당나라 때는 실크로드가 황금기를 구가하면서 인구가 100만 명에 달하는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했다. 지금도 시안은 이탈리아의 로마, 이집트의 카이로, 그리스의 아테네와 함께 ‘세계 4대 고도(古都)’로 꼽힌다.
‘중국의 100년을 알고 싶다면 상하이로, 중국의 500년을 알고 싶다면 베이징으로, 중국의 3000년을 알고 싶으면 시안으로 가라!’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시안에는 세계 8대 기적으로 꼽히는 진나라의 병마용, 병마용과 판이하게 다른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 잡는 한나라의 테라코타, 당나라 황제의 로맨스와 시안 사변의 무대가 되었던 화청지, 중국 3대 박물관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산시 역사 박물관 등 볼거리가 가득하다.
- 다음 백과사전에서 인용
↘ 아시아나 기내에서
↘ 시안공항에 도착하여
↘ 숙소로 이동하여 짐을 풀고
↘ 숙소를 나와
↘ 지하철 역으로 이동
↘ 지하철 2호선 종루역에서 승차
↘ 소한역에서 3호선 환승하여 대당부용원역에서 내림
↘ 지하철 승차권
↘ 대당부용원 입구에서
실제 당나라 역사 속 부용원은 황가어원(皇家御院)으로, 창경궁의 비원을 연상하면 이해가 빠르다. 면적이 661,157㎡로 우리나라 남이섬의 1.5배 크기에 달하는데, 그중 호수인 푸룽 호(芙蓉湖)가 3분의 1 가까이 차지한다. 당나라의 전성기를 재현하고자 한 노력이 엿보이지만, 인위적인 냄새가 아직 가시지 않아서 입장료만큼의 만족감이 느껴지진 않는다. 무척 넓은데 나무그늘이 많지 않아서 여름철 한낮에 방문하면 사우나가 따로 없다. -다음 백과사전에서
↘ 부용원에 들어와
↘ 부용원 곤람을 마치고 천하제일면에서 뱡뱡면, 탕수육, 시안 햄버거로 저녁
↘ 저녁먹고 (대당부용원역에서 한 정거장 대안역) 대안탑으로 이동
648년 당 태종의 아들 이치(李治, 당나라 3대 황제인 고종)가 돌아가신 어머니 ‘문덕 황후’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황가 사원이었다. 당시에는 장안에서 가장 큰 불교 사원이었는데, 당나라 말기 전란 때 불에 타 황폐해졌다. 1887년에 보수하면서 본래 규모보다 작게, 7분의 1로 축소해 지었다.
지금은 인도에서 돌아온 현장(玄奘)이 머물면서 불경 번역에 몰두했던 곳으로 더 유명하다. 사원 뒤뜰에 있는 대안탑은, 652년 현장이 인도에서 가져온 법문 경전을 보관할 목적으로 세운 것이다. 처음에는 5층으로 지었는데 파괴되었고, 재건하는 과정에서 10층으로 높여 지었으나, 지금은 7층 전탑으로 높이가 64m에 달한다. 위로 갈수록 탑의 폭이 좁아지고, 층마다 아치형 창을 낸 것이 특징이다. 별다른 장식을 하지 않았지만 고풍스럽게 아름답다.
↘ 대안탑에서 회민가(회족거리)로 이동
고루 뒤편 베이위안먼(北院门) 거리는 시안에 사는 후이족의 심장부다. 중국에 들어온 아랍인들이 중국인과 결혼을 통해 정착하면서 후이족이 되었다. 후이족이 처음 정착 생활을 한 지역이 산시 성(陕西省)으로, 아편 전쟁 때는 최고 170만 명에 달했다. 현재 산시 성에 거주하는 후이족은 5만여 명에 불과한데, 시안에서 후이족이 집중적으로 모여 사는 지역이 바로 여기다. 베이위안먼 거리를 중심으로 서쪽 다마이스제(大麦市街)와 남쪽 시다제(西大街)까지 집단을 이루어 살아간다.
↘ 서안 종루
시안의 동서남북 4개 대로가 만나는 중심에 있어서, 언뜻 보면 외딴 섬처럼 고립되어 보인다. 오래 전 종루는 새벽을 깨우는 역할을 했었다. 종루에서 타종을 하면 밤새 닫혀 있던 성문이 일제히 열렸던 것이다. 1384년 종루가 처음 세워졌을 땐 지금 위치에서 서쪽으로 두 블록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1582년에 건물을 통째로 현재 위치로 이동해 왔다. 중국 전역에 있는 수많은 종루 중에서 역사와 예술적 가치가 으뜸으로 꼽힌다. 높이 36m의 3층 누각 꼭대기에 솟은, 상투처럼 생긴 나무 심지가 해질 녘이면 아름답게 빛난다. 구리를 덧씌우고 도금까지 해서 멀리서도 반짝반짝 빛난다. 어둠이 내리면 320개의 조명을 환하게 밝혀서 낮보다 자태가 훨씬 수려하다.
↘ 서안고루
종루에서 서쪽으로 200m 떨어진 고루는 종루보다 4년 앞선 1380년에 축조되어서, ‘밤을 알리는 시계’ 역할을 했다. 고루에서 북을 치면 시안의 성문이 일제히 닫혔던 것이다. 전체 높이가 33m로 종루보다 약간 작지만 명나라 초기 목조 건축의 정수로 꼽힌다. 현재 모습은 1740년에 대대적으로 보수한 것이다.
↘ 서안고루에서 도보로 이동하여 숙소에 들어와
'홍매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시안(西安)여행 -3 (0) | 2019.03.22 |
---|---|
중국 시안(西安)여행 -2 (0) | 2019.03.22 |
운남성 8박9일 자유여행(8일차) (0) | 2018.11.29 |
운남성 8박9일 자유여행(7일차) (0) | 2018.11.29 |
운남성 8박9일 자유여행(6일차) (0) | 2018.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