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팔달산(가족 나들이)

수원 화성 성곽길

一切無 2024. 9. 15. 12:34

일시 : 1994. 3월 말경

 

 

 

산수유 꽃이 피었다.

아이들과 버스를 타고 장안공원 화서문에서 내려 성곽 밖 장안공원을 

노닐며 북문, 화홍문, 방화수류정, 연무대, 동북 공심돈까지 걸었다.

아이들은 봄 나들이가 재미있었을까?

 

 

 

 

 

 

 

 

↘ 수원 화성 안내도

 

 

 

 

 

 

 

↘ 장안공원에서

 

 

 

 

 

 

 

서문 아파트는 1969년 공사를 시작해서 1972년에 완공했다. 3층 건물 4개동으로 144호가 입주했다.

1970년 아파트 입주자들은 철거민들이 대부 분 이었으므로 살기가 어려운 사람이 많았기에 분양금을 줄여주기 위해서 국유지에 지었는데 골조공사는 시에서 예산을 들여서 공사를 하고 실내는 입주자가 마무리 하는 방법이 적용되었다"고 밝힌다. 전용면적은 13㎡(10평) 정도로써 방2개, 거실과 주방이 있었고 화장실은 건물 양옆에 지은 공동화장실을 이용했다. 난방은 연탄을 사용하였으므로 주방에 아궁이가 설치됐다. 목욕과 세면은 연탄아궁이에 데운 물 로 주방에서 했다고 한다. 

수원시는 1999년 5월 20일 서문아파트 이주계획을 수립.  수원시 1호아파트는 2002년 철거됨으로써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좌측 4동, 우측 3동

 

 

 

               

               좌로부터 1동, 2동, 3동, 위쪽 4동

 

 

[공감칼럼] 그 자리에 ‘수원시 1호아파트’가 있었다에서 캡쳐

철거되기 전의 서문아파트. 사진제공/이용창 (사)화성연구회 이사

 

 
 

 

 

 

 

 

↘ 서북 공심돈과  좌측 서문아파트 1동, 우측 벽산아파트, 숙지산을 배경으로

    서문아파트 우측 맨 끝 창문이 보이는 곳 312호, 아래 212호가 아빠가 14년을 살았던 곳. 

 

1969년 여름에 골조 뼈대공사 콘크리트 타설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언덕에서 함석으로 받친 통로로 내려 부리던 장면.

우리집은 1970년 초에 입주.

 

 

 

장안문(북문)을 지나 성 안으로 들어와 방화수류정을 배경으로

 

 

 

 

 

↗ 화홍문에서

 

 

 

↘ 방화수류정에서 

 

 

 

 

↘ 연무대, 동북 공심돈을 가면서 가위 바위 보 놀이도 하고 

 

 

 

아니 어떻게 들어 갔나요?

 

 

 

↘ 동북 공심돈을 내려오며 화성 성곽 나들이를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