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하착(放下着)은 불교 용어로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아라, 또는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뜻이다. 우리 마음속에는 온갖 번뇌와 갈등, 스트레스, 원망, 집착 등 욕심들이 얽혀있는데, 그런 것을 모두 벗어 던져버리라는 말이 방하착 (放下着)이다. 편안한 마음을 갖자.
↘ 2021. 7. 11. 일요일. 흐리고 비
어제에 이어 오늘은 봉산 편백나무 숲길을 다녀왔다. 편백나무 숲길에서.
이 글은 퍼온 글인데,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려면 꼭 알아야 하기에 가족들에게 읽어 보기를 권한다. 아버지의 명이다.
오온개공을 실천하기 위해서는'아상 타파'가 수행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상을 타파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이점이 불교 수행의 핵심임을 바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선 첫째로 이 몸을 보고, '나다'라고 하는 것을 타파해야 합니다. 몸뚱이 집착심을 없애야 한다는 말입니다. 몸뚱이란 아상이 생기는 첫 번째 요인입니다. 내가 없다고, 공하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이렇게 몸뚱이가 있는 것을 보고 누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몸에 대한 애착 내지 집착을 여의려면 끊임없이 닦아가는 정진의 수행이 요구됩니다. '나'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인해 몸을 편하게 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그 마음은 우리를 게으름과 나태로 몰고 갑니다. 내 몸 하나 편해 보자고 하는 마음이야말로 몸에 대한 애착심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이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아상을 거스르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수행자들이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규칙적인 수행과 정진으로 매진하는 이유도 바로 이 몸뚱이 착심이란 아상을 닦기 위한 수행입니다.
두 번째로 '내 것이다'라고 하는 물질적인 소유욕을 버려야 합니다.'아상'에 기초하여 나와 너를 가르는 마음이 있으니, 내 것, 네 것이라는 관념이 생기게 되고, 좋아하는 것을 보면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사실 본래부터 내 것이고, 네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다만 인연을 쫓아서 물처럼 잠시 오고, 잠시 가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의 삶은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중심이 되어 모든 행을 하게 됩니다. 돈을 많이 벌어 내 것으로 하고 싶고, 좀 더 높은 명예와 지위를 가지기를 바라며, 좋은 친구, 동료를 가지기를 바라고, 좋은 배우자를 선택하기를 바라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행위 자체가 모두 아상에 기초한 것이므로 버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이렇게 돈이나 명예, 그리고 사람들을 내 것으로 하고자 하는 소유욕이 있으니, 그것들이 무상한 줄을 올바로 알아 얽매여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거기에 대한 집착을 놓으라는 것입니다. 바로 방하착 하라는 것입니다. '내 것이다'라는 아상이 없다면, 그것을 가지고 있을 경우 인연 따라온 것임을 알아 잘 활용할 수 있고, 없어지더라도 내 것이라는 집착이 없으므로 괴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내 것이다'라는 상을 타파하기 위한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방법이 바로 무주상 보시의 삶입니다. 상에 머무름 없이 보시를 한다는 말입니다. '남에게 보시만 하면 나는 무얼 먹고사나?'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에게 있는 모든 것을 남에게 상없이 보시하여 내가 무소유가 되었을 때, 진정 우주 법계를 내가 소유하는 것이란 이치를 깨치게 될 것입니다. 저축을 하십시오. 저축을 하되, 나에게 하지 말고, 이 우주 법계에 상없이 저축을 하는 것입니다. 통장에 저축하면 그 액수만큼만 내 것이지만, 일체의 모든 대상에게 상없이 보시함으로써 저축을 삼으면, 그 사람은 법계를 품에 안은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무량 대복이 따릅니다. 무량 대복자란, 나에게 있는 재산만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 내가 필요할 때 언제고 필요한 만큼의 재산을 법계에서 끌어다 쓸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로 '내가 옳다'라는 나의 생각에 대한 고집, 고정관념, 선입견에 고집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정해 놓거나, 혹은 사회가 정해놓은 고정된 관념의 사슬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옳고 그르다는 것이 본래로 없는데, 우리는 내 생각이 옳다고 고집을 하여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고정관념에 빠져 그 관념대로 되지 않을 때 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진정 대자유인이 되어 걸림 없이 자유인으로 살려면 우선 고정된 틀 속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나에 대한 집착심이 곧 고정관념(편견, 선입견)이며, 고정관념이 극단화된 것이 바로 아집입니다. 그러므로 '편견으로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보라, 정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공 사상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연기의 사상, 무아의 사상에 철저히 충실한 사상입니다. 본래 연기의 존재이며 텅 비어 있는 공으로서 적정한 우리의 마음에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무언가를 자꾸만 집어넣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온갖 분별심을 가지고 편견과 고정관념의 벽을 만들어 놓고는 스스로 만든 벽에 부딪쳐 힘들어하고 괴로워해 온 것이 우리들의 삶입니다. 이러한 고정관념의 벽이 있기에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롭지 못했고 괴로웠던 것을 이제 올바로 깨쳐야 합니다.
좋고 나쁜 것, 선과 악, 자유와 부자유는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일 뿐입니다. 이제 어떠한 극단적 편견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너와 내가 서로 둘이 아닌 존재로서 연기의 존재라는 것을 올바로 알아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삶을 살고, 어떠한 분별심도'턱' 내려놓을 수 있는 삶, 본래로 텅 비어 있기에 일체의 무거운 짐을 본래 자리에 내려놓고 가는 삶이야말로 공 사상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생활 속의 실천 수행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방하착입니다.
방하착이란 무엇인가? '방'은 '놓는다'는 뜻이며, 착은 '집착, 걸림'을 말합니다. 즉 공이라는 도리를 올바로 알지 못하고, 온갖 것들에 걸려 집착하는 것을 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 라는 것은 '아래'라는 의미이지만, 그 아래는 보통 '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존재의 가장 깊은 곳, 그 '아래'에 있는 뿌리와도 같은 우리의 '불성, 한마음, 본래면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방하착은 공이라는 이치를 올바로 모르고 있기에 저지를 수 있는 우리 마음속의 온갖 집착들을 모두 마음의 바탕 자리, 본래면목의 한마음 자리에 놓아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체의 끄달림을 놓는 것입니다. 놓되'몰록' '온전히'놓아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몽땅 놓아 버리는 것입니다.용광로 속에는 그 어떤 더럽고 녹슨 고철이라도 넣기만 하면 모두 용광로와 하나가 되어 녹게 마련입니다. 그렇듯,우리의 마음자리, 본래면목, 참 주인공도 그와 같아 우리의 수많은 번뇌와 업장들을 모두 녹이기 마련입니다. 문제는,이 모두를 스스로 놓아버릴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놓으면 되지만 놓지를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면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붙잡기만 하는 삶이었습니다. 돈과 재물을 붙잡고, 지식을 붙잡고, 명예와 지위를 붙잡고, 이 모든 것들에 '내 것'이라는 상을 짓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살아왔습니다. 한 번도 '턱' 놓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놓으면 큰일이 나고, 죽는 줄로만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내 것, 내 가족, 내 돈, 내 생각, 내 가치관 등등 '나'라는 의식으로 인해 모든 것을 가지려는 삶을 살아온 것입니다. '가지고 붙들려는 삶'을 '놓는 삶'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정말이지 커다란 의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붙들었을 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놓았을 때 진정 잘 되어 나가는 것이라는 의식의 전환 말입니다. 일체를 소유하지 않았을 때, 진정으로 무소유가 되었을 때 이 우주 전체를 소유하게 된다는 소중한 도리를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까짓 일체가 공인 마당에 무엇이 아까울 것이 있겠습니까? 공과 하나가 되었을 때, 우리 마음속에 본래 자리잡고 있던 밝은 지혜가 환히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반야'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 수행은 무소득, 무소유 ,무집착, 방하착의 수행이며, 공과 하나가 되는 수행인 것입니다. 이것이 반야심경이 우리에게 던지는 실천 수행의 길인 것입니다. 일체를 놓는 것, 이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입니다.
방하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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